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 l 김인규 지음, 교육공동체벗, 2만4000원
그렇게 그리지 말라고 하는데도 크레파스로 벽에 몰래 그리던 것 생각해본다면 ‘그린다’는 것은 본능적인 행위로 보인다. 본능을 숨기게 된 걸까, 본능을 버리게 된 걸까. 어른이 되어서 본격적인 취미를 가진 이 외에, 낙서로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초등학교 미술 교사인 김인규는 ‘그리기를 두려워해서’라고 진단한다. 그렇게 된 원인은 학교의 미술 시간에 있다. 김인규 초등학교 미술 교사가 교과서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게 진행해본 4년간의 수업 결과물을 정리했다. 김 교사의 비법은 ‘그리기’라는 행위를 짐짓 모른 체하기다.
먼저 ‘깜지 활동’이 있다. 미술 첫 수업시간에 4비(B) 연필과 종이를 주고 까맣게 칠하라고 했다. 아이들이 칠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옅게 그리거나 진하게 그리거나 채도가 다르고, 무작위로 선을 채워가기도 하고 규칙적으로 채워나가기도 하고 그린 그림을 지워 까맣게 만들기도 한다. 깜지 활동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그려야 한다는 고정 관념으로부터 아이들이 벗어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된 수업은 6학년 때까지 이어지는데, 학생들이 머리가 굵어지면서 표현 방법 또한 확장되어간다. 깜지를 다른 종이에 묻히기도 하고 여러 명이 함께 뱅뱅 돌아가며 그리기도 한다. 이후로 종이에 물감으로 ‘깜지’를 만드는 활동 등으로 확대해나갔다.
그는 ‘보고 그리기’에서도 ‘그리기’가 아니라 ‘보고’에 강조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는 것을 강조하다 보면 똑같이 그리는 일은 어렵기 때문에 몇 차례 시도 끝에 좌절하기 마련이다. 풀을 그리라는 숙제가 주어졌을 때, 김 교사는 하나의 풀잎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보이는 대로 그리도록 한다. 잘 안 되면 손으로 짚어가며 그린다. 차례로 그 옆의 풀잎을 추가해간다.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나아가라는 일반적인 미술 지도를 거스른 것이지만 ‘관찰’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알맞았다. 동무의 옆 얼굴을 그릴 때 아이들은 몸은 그리고 얼굴을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코가 중앙에 있지 않는 등 관찰 결과가 머릿속 이미지와 달라서였다. 이런 과정을 계속하면서 아이들은 관찰한 자신의 눈을 믿고 그림을 그려나가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잘 그리는 것과 못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림을 보여주지 않던 아이도 자신의 성장을 감지하면서 숨기지 않게 되었다. 교사는 어디서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지를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과서 수업(지식적 차원)으로 시작해 콜라주 기법, 먹을 이용해 그리기, 가장 높게 만들기 등 여러 과정으로 발달해가는 수업이 꽤 재밌었을 듯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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