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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이슈 미술의 세계

    하와이 이주 동포들을 역사의 주연으로 만든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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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3층 전시장의 일부분. 지난 세기 광화문의 곡절 어린 역사적 흔적들을 당대의 사진 이미지들을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새롭게 환기시킨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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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9월 서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은 제자리에서 쫓겨난다. 조선총독부를 지은 일제에 의해 경복궁 동쪽 건춘문 위쪽으로 이전된 것이다. 1951년 1월 문은 전쟁의 포탄을 맞아 불타며 무너져 내렸다. 3개의 출입문이 난 육축만 을씨년스럽게 남았다. 당시 국립박물관장 김재원은 “밤에 타기 시작하여 낮같이 밝았으며 그 타는 것이 무슨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듯하였다고 한다”고 훗날 회고했다.



    지금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3층 기획전시실에는 비극적으로 불탄 광화문의 육축 폐허를 찍은 큰 사진이 붙어 있다. 그 앞에 작은 구조물을 만들어 여러 시기의 광화문 사진들을 따로 붙였다. 1938년 미국 하와이 동포들이 호놀룰루 시내에 얼기설기 만들어 세운 미니 광화문, 2007년 복원을 위해 콘크리트 광화문을 없애고 가림막을 친 경복궁 풍경, 1927년 광화문을 쫓아낸 뒤 경복궁을 가로막고 들어선 조선총독부 청사 등 사진이 겹쳐 보이게 한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열리고 있는 건축학도 출신 작가 김성환씨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가 펼쳐낸 독특한 전시 풍경이다. 작가는 시기별로 존재의 면모를 달리하는 광화문의 역사적 풍경들을 중첩의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묻는다. 시간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사라지는가?



    2007년 사라진 광화문을 찍은 이는 작가의 친구인 서구 여성 작가 미카 반 데 보르트다. 그해 그는 서울 도심 곳곳을 동영상과 사진에 담았다. 광화문을 찍고 나서는 숭례문(남대문)을 통과하며 동영상에 담았다. 1년 뒤 숭례문은 방화범에 의해 불덩이가 되어 문루가 사라졌다. 보르트 또한 4년 뒤인 2011년 세상을 떠났고, 이 서울 동영상은 그의 유작이자 서울의 또 다른 역사적 기록이 됐다.



    김 작가는 친구의 동영상 이미지들을 일제강점기 서울을 뜻하는 경성(게이조)의 근대 거리를 담은 풍경 사진들과 병치시키고, 1935~37년 서울을 여행한 스웨덴 민속지학자 스텐 베리만의 기행문 대목을 낭독하는 육성까지 곁들인다. 이런 교묘한 얽힘의 방식을 통해 역사와 시간을 독특하고 오묘한 오브제로 전화시켜낸다.



    한겨레

    하와이 동포들의 이민사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을 조형적으로 재구성한 2층 전시장.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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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전시의 본류는 2층과 3층에 흩어진 하와이 한인 이주민들의 역사 영역이다. 김 작가는 3층의 광화문, 게이조 영상 사진 작업과 비슷한 중첩과 얽힘의 방식을 구사해 이들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한다. 구한말 이래 20세기 초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간 선조들의 고된 정착사와 그들 사회에서 배출한 선각자와 춤꾼 등 문화예술인, 고된 생활사의 기억들, 미국의 압제와 원주민들의 갈등과 항쟁, 하와이 군도의 대자연 등이 기하학적 건축 구조의 공간이나 동영상 이미지, 설명 패널 설치물 등으로 돌올하게 풀려 나온다.



    하와이 이주 교민사는 고난을 딛고 정착하고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고취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익히 알려진 역사적 상식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이런 상식 이면의 내면적 흐름과 미시사의 흔적들을 사운드아트가 들어간 현대미술의 조형적 언어로 예민하게 드러내려 한다. 과거 역사의 한구석으로 들어가 그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콘텍스트를 끄집어내어 일종의 조형적 오브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작가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역사적 개념미술의 색다른 지평을 펼쳐 보인다. 30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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