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의장단이 1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서십자각 인근 농성장에서 3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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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을 하려면 에너지를 잘 비축해야 해요. 우리는 이제 에너지를 얻을 수가 없으니까 오래 버티려면 틈틈이 누워서 쉬어야 합니다. 죽염도 잘 챙기시고.”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의장단이 서울 경복궁 서십자각터에 농성장을 꾸리고 단식을 벌인 지 사흘째 되는 10일 오전 11시께. 박석운 의장(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이 ‘단식 초심자’인 나머지 의장들에게 단식 노하우를 전수했다. 나란히 ‘윤석열 즉각파면 단식농성 3일차’라고 적힌 팻말을 가슴팍에 매단 채였다. 비상행동 의장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된 지난 8일 저녁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이들이 곡기까지 끊고 나선 이유는 자칫하다가 역사의 퇴행을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비상계엄 해제와 탄핵 소추, 윤 대통령 체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면에서 그랬듯,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지금도 시민들의 연대가 역할을 할 때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남태령 농민들과 시민들이 연대할 때, 한남동에서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연대할 때, 장엄한 감동이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윤석열이 체포되고 구속된 것이다. 파면 결정을 앞두고 윤석열이 석방됐으니 다시 주권자가 총집결할 때”라고 말했다.
10일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비롯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의장단이 서울 경복궁 서십자각터에 농성장을 꾸리고 단식을 벌인지 사흘째다. 이지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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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과 뒤이은 석방을 박 대표는 ‘법비의 난’이라고 불렀다. “법적으로 비상계엄이 위헌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나도 너무 확신에 차서 안이했던 면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석방을 보면서) 자칫 우리가 한눈팔다 코 베이는 수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상행동 의장단의 단식 기간은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에게 파면 결정을 내릴 때까지다. 이번주 탄핵 심판 선고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지만, 국민의힘은 변론 재개를 주장하고 있다.
만일 ‘파면’이라는 지당한 결정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 의장단 생각이다. 김민문정 의장(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은 “만일 탄핵심판이 기각되거나 각하되면 ‘위법한 명령’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게 된다. 무장한 공권력이 대통령의 지시를 모두 따를 수밖에 없는 시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며 헌재가 만장일치로 ‘파면’ 선고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헌재도 많은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라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 믿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경복궁 서십자각터에 꾸려진 비상행동의 농성장은 이미 윤석열 파면 투쟁의 거점이자 사랑방이 됐다. 이날만 해도 오전 10시에 윤석열퇴진전국대학생시국회의 소속 대학생들이 농성장을 방문해 응원을 전한 뒤 ‘윤석열 만장일치 파면 촉구 대학생 1만인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후 3시30분에는 한국노총이 이곳에서 시국선언을 했고, 저녁 6시에는 야5당 비상시국 공동대응 원탁회의가 농성장을 방문해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비상행동 농성장 인근에는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 등 정당들의 천막 등이 펼쳐지며 ‘천막촌’이 세워졌다.
시민들의 응원 방문도 종일 끊이지 않았다. 바빠서 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서울 도봉구 주민 이성문(65)씨는 이날 시청역 인근에서 친구들을 만난 뒤 농성장을 찾았다. 이씨는 “윤석열 석방 소식을 보고 법조 카르텔이 아직도 내란에 협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항상 여길 들러보고 싶었는데 바빠서 못 나왔다. 오늘은 시간이 난 김에 응원도 할 겸 마음의 위안도 얻을 겸 들러봤다”고 말했다.
10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의장단이 단식에 돌입한 서울 경복궁 십자각터에 농성장 인근에서 시민들이 연대 농성을 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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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비상행동과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의 농성도 시작됐다. 40대 직장인인 김아무개씨는 연차까지 내고 2박3일째 경복궁 앞을 지키고 있다. 김씨는 “윤석열 파면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목소리 내는 시민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나왔다. 윤석열은 두시간 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조기 진압돼도 범죄는 범죄”라며 “윤석열이 석방된 것에 정말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대세에 지장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바쁜 일정 속에 틈틈이 시간을 내 연대하러 온 시민들도 있다. 이날 낮 경복궁 담벼락을 마주 보고 앉아 한강의 시집을 읽고 있던 취업준비생 김아무개(22)씨는 바쁜 시간을 쪼개 3시간 농성에 나선 참이라고 했다. 김씨는 “뉴스를 보다가 화가 나서 뛰쳐나왔다. 여기로 오면 동지들이 있을 거란 믿음이 있고, 나와 같은 의견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분노가 좀 해소된다”며 “단식까지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광장에 안 나오는 건 양심에 찔린다”고 웃었다.
비상행동의 바람은 ‘남태령과 한강진의 기적’을 광화문 앞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평일 매일 열리는 집회 기획을 맡은 박민주 비상행동 행진팀장(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국장)은 “고령의 어르신들이 거리로 나와 단식을 하고 있어서 많은 분이 그 책임감과 결심을 알아주시면 좋겠다”며 “저희는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서로 힘을 주고받고 싶다”고 말했다. “광장은 비상행동이 지키고 있을 테니 시민 여러분은 밥 잘 먹고 힘을 내서 집중 행동을 할 때 나와주시면 좋겠어요. 언제나 광장에 나오실 수 있도록 자리 지키고 있겠습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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