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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만개한 벚꽃, 일본의 시간이 왔다… “이런 게 공공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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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1912년 벚나무 3000여 그루 선물

매년 봄마다 벚꽃 축제… 美·日우호 상징 거듭나

대미 공공외교 최고 성공 사례로 꼽혀

질 바이든 여사(오른쪽)과 유코 기시다 여사가 지난 2023년 4월 백악관 잔디밭에서 벚나무 묘목을 심는 행사에 참석해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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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는 매우 약한 나무입니다. 특히 습기에 매우 취약해서 통풍이 아주 중요하죠. 동쪽 공터에서 바람이 부는 덕분에 이 나무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1000년 이상을 번성할 수 있었죠.”

지난 18일 워싱턴 DC 도심의 주미 일본문화원(JICC). 미국의 조경가이자 일리노이공과대(IIT) 알파우드 수목원 연구 담당(조경학) 교수인 론 헨더슨이 핑크색 벚꽃으로 도배된 슬라이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말했다. 헨더슨은 2012년 봄 도쿄·교토 등 일본 전역을 4개월 동안 다니며 이른바 ‘사쿠라(さくら)’라 불리는 벚꽃의 매력에 푹 빠졌고, 이를 기록으로 정리해 책으로도 펴낸 인물이다. 이날 강의는 퇴근 시간이 꽤 지난 오후 6시30분부터 시작됐지만, 헨더슨의 강의를 듣기 위해 100명이 넘게 몰려 문화원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비영리 단체 직원인 네이선씨는 “원래도 일본 대사관이나 문화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인기가 상당해 늦으면 자리가 없다”고 했다. 헨더슨이 일부 묘목 가지를 가져와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체험까지 가능하게 만든 덕분에 호응이 특히 더 뜨거웠다.

수도 워싱턴의 명물인 벚꽃의 만개(滿開)가 임박했다. 예년보다 수은주가 올라간 탓인지 이미 백악관이나 의회, 링컨·제퍼슨 메모리얼 같은 도심 주요 명소에선 벚꽃이 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워싱턴에 심어진 대부분의 벚나무는 1912년 3월,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당시 도쿄 시장이 미·일 우호의 상징으로 선물한 쇼메이 요시노(染井吉野櫻) 품종의 벚나무 묘목 3000여 그루가 시초가 됐다. 이때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게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의 배우자인 헬렌 여사, 외교관 오빠와 일본 여행을 갔다가 ‘벚꽃을 워싱턴에 심겠다’는 꿈을 꿨다는 엘라이자 시드모어다. 지난해 4월에도 미국을 국빈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가 미국 독립 250주년(2026년)을 축하하는 뜻으로 벚나무 250그루를 기증했다. 당시 기시다는 “벚나무가 수명 60년보다 훨씬 넘는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워싱턴에서 살아남았다”며 “지역 주민들이 벚나무를 아끼고 보호해 온 것처럼 미·일 관계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18일 미국 워싱턴 DC의 일본문화원에서 조경가인 론 헨더슨 일리노이대 교수(오른쪽)가 벚꽃 보존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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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의 지하철 외벽에 벚꽃 래핑이 돼 있는 모습.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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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츠대 플레처스쿨 학장인 에드먼드 걸리언 박사가 제기한 개념인 ‘공공 외교(public diplomacy)’는 상대 국민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매년 이 시기면 일본이 워싱턴 DC 전역에 만개한 벚꽃을 이용해 그 정수를 보여준다. 미국의 주요 언론사는 매년 이 맘때면 ‘어떻게 워싱턴이 일본 벚꽃으로 가득차게 됐나’는 기사를 단골로 다루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공 외교 사례로도 꼽힌다. 지난 20일 개막해 다음 달 13일까지 계속되는 시 당국의 ‘벚꽃 축제’에는 항공사 전일본공수(ANA)가 미 빅테크인 아마존과 함께 최상위 스폰서인 ‘리더십 서클(leadership circle)’로 참여했다. 미 전역에서 매년 150만명이 벚꽃 축제를 보기 위해 수도를 찾는데, 워싱턴 DC 관광 수입의 3분의 1 이상이 여기서 발생한다. 주미 일본 대사관은 물론 대형 제약회사인 다이이치산쿄, 일본국제교류기금(国際交流基金), 미쓰비시, 마루베니, 파나소닉, 렉서스 등 일본의 민관 기관 수십 곳도 후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정부의 유력 인사들 일부도 이 시기 워싱턴 DC를 찾아 대미(對美) 아웃리치를 할 예정이다.

이날 문화원에서 열린 헨더슨의 강의 사흘 뒤 국립 수목원에서는 벚꽃 보존에 관한 행사가 추가로 열려 역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문화원은 이보다 한 달 앞서서는 “워싱턴 DC에서는 매년 150만명 이상이 모여 하나미(花見·꽃 구경)를 통해 미·일 우정을 기념한다”며 ‘벚꽃 사진 콘테스트’를 개최, 수천 장이 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18일 헨더슨 강의 때 찾은 문화원 1층 복도에는 수상작들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었다. 정부가 몇 개월 전부터 나서서 판을 깔아주니 벚꽃 축제를 전후로 워싱턴 DC의 레스토랑과 술집 등이 스시·사케·다도·위스키 같은 일본의 문화 유산을 활용한 이벤트를 기획해 집객에 나선다. 자연스럽게 소셜미디어에 ‘벚꽃 축제 일식 맛집’ ‘워싱턴 DC에서 일본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같은 콘텐츠들이 도배가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벚꽃 축제를 테마로 하는 주요 호텔 패키지는 이미 대부분 매진이 된 상태다.

이 시기 미·일 관계, 일본의 외교·안보, 미·일과 다른 나라와의 3자 협력 등을 주제로 한 진지한 이벤트들도 유독 집중적으로 열린다. 스팀슨센터는 25일 ‘더 깊은 미·일동맹’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26일 미 의회에서는 일본의 대미 아웃리치 전진기지라 할 수 있는 맨스필드재단이 일본 대사관과 함께 ‘미·일 간 입법 협력’에 관한 브리핑을 진행할 예정이다. 워싱턴 DC를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석좌는 에너지·첨단 기술 협력, 공군 유지·보수·운영(MRO) 등을 주제로 하는 행사를 이번 달에만 세 차례나 개최했다. 일본 사사카와재단 등은 일본을 연구하는 연구원과 대학원생 등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방일(訪日) 프로그램을 기획해 이들이 지일파(知日派)로 거듭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1일 워싱턴 DC의 '타이들 베이신' 지역에 벚꽃이 일부 피기 시작한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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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 만개한 벚꽃 사진. /워싱턴 DC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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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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