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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시선2035]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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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어환희 IT산업부 기자


[발신인] 인사관리처(OPM)

[제목] 당신은 지난주에 무엇을 했습니까?

[내용] 지난주 달성한 성과를 5가지 정도로 요약해 답장하세요. 상사도 참조인으로 걸고, 기밀 정보·링크·첨부 파일 등은 보내지 마세요. 마감일은 이번 주 월요일 오후 11시 59분입니다.

아마도 이런 메일이 아니었을까. 2월 마지막 주 월요일, 미국 연방 공무원 230만 명이 출근해 마주했을 화제의 메일 말이다. 구글 이미지를 뒤져서 찾은 메일 원본 캡처를 우리 말로 번역해 봤다.

지난달 17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대가 일론 머스크와 미국 정부효율부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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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보낸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는 “회신하지 않으면 사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초강수를 뒀다. 비슷한 시기 그는 연방기관에 근무 기간이 1년 미만인 사원들을 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해고 사유는 저성과였다.

잇따른 대규모 구조조정 칼춤에서 머스크가 내거는 원칙은 ‘효율’이다. 트럼프 2기 첫 국무회의에서 첫 발언권을 얻은 그는 “정부 시스템이 극도로 노후화됐고, 막대한 재정 적자를 해결해야 한다. 살해 협박까지 받고 있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서 계시라도 받은 듯 정부효율부 목표를 제시했다. 효율이 미덕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효율’ 명제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저성과자 해고가 옳냐 그르냐에 대한 논의는 아니다. 정부가 추구하는 최우선의 가치가 효율이어도 괜찮을지에 대한 우려다. 철학자 니체는 “효율성으로 다른 본질적인 요소들을 간과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는데, 현실로 드러났다. 수천 명의 수습직 공무원이 하루아침에 잘렸다. 30분 내 회사 건물을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거나 해고 통지 메일을 받지 못했다는 사례도 외신을 통해 나왔다.

남의 나라 일을 두고 왜 걱정이냐 싶지만, 사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야당의 입법 독재, 반국가 세력 등 위태로운 국정 운영을 명분 삼아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한 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식적인 사회 시스템을 통해 국정을 바로잡을 순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논하기에 앞서, 계엄 자체도 국회 통보 의무 위반·요건 미충족 등 절차적 하자에서 못 벗어나는 상황이다. 매주 서울 도심이 양분되고, 국가 경제가 휘청이는 부작용도 빠질 수 없다.

효율과 성과 지상주의에 가려 절차와 과정이 맥을 못 추는 미국 상황에 제동을 건 것은 법원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법원은 일괄 해고된 수습직 공무원들의 복직을 명령했다. 일론 머스크와 인사관리처가 각 정부 부처에 직원 해고를 명령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어쩌면 미국보다 더 심각한 국내 상황. 우리 헌법재판소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정치적 효율보다 사회적 수용이 가능한 결정이길 바란다.

어환희 IT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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