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무죄에도 '일단 불복' 관행
"수심위·상고심의위 실질화 필요"
지난 5월 3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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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법원에서 기소 5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수사 단계부터 나온 외부 자문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했던 검찰의 논리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는데도 기계적으로 상고하는 검찰의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7일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등 혐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등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과 삼정회계법인 관계자 등 13명에 대한 무죄 판결도 유지됐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고 제일모직 주가는 띄운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검찰은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 회장이 삼성물산 소유의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키우려 했다고 의심했다. 불법 합병을 은폐하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4조5,000억 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도 공소사실에 포함시켰다.
기소된 지 3년 2개월 만에 나온 1심 결론은 '19개 혐의 전부 무죄'였다. 이 회장이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각종 부정행위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검찰 주장을 모두 배척한 것이다. 법원은 또 검찰이 제출한 주요 자료들에 대해 "압수수색 과정에서 적법한 선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능력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결과도 전부 무죄였다. 법정에서 두 차례 모두 완패했는데도 검찰은 형사상고심의위원회(상고심의위) 심의를 거쳐 상고했다. 법률심인 대법원 상고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검찰은 상고를 강행했다. 결국 대법원은 이날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이 회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 회장 측은 선고 직후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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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선 이날 선고를 계기로 검찰의 기계적 상고 관행에 실질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1심에서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 헌법상 '이중 위험 금지' 조항에 따라 기본적으로 검찰의 항소를 제한한다. 반면 국내에선 1·2심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라도 검찰이 불복하면 최종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법적으로 계속 불안한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회장도 기소된 뒤 대법원 판결까지 5년 동안 법적 불안정성 때문에 경영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
상소(항소 및 상고) 제도의 취지는 피고인의 권리 구제를 위한 것이지만, 국내에선 검찰에게 혐의 입증의 '추가 기회'를 주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사건일수록 검찰의 상소는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앞서 검찰은 실시간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를 불법 콜택시 영업으로 보고 이재웅 전 쏘카 대표를 기소했지만 1·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그럼에도 대법원 판단을 받아야겠다며 상고했지만 2022년 무죄가 확정됐다.
앞서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성분 조작 혐의로 기소된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재판도 유사한 사례다. 지난해 11월 1심 법원은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과학적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이례적으로 검찰을 질타했다. 국내에선 기소 후 4년여간 형사재판이 진행된 것과 달리, 미국에선 식품의약국(FDA) 조사 후 안전성 우려가 해소됐다고 보고 인보사의 3상 임상실험을 승인한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1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재판은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 없게 됐다.
대검찰청은 상고권의 적정한 행사를 위해 2018년부터 법학자와 변호사 등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상고심의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고심의위 결정에 구속력이 없어 검사가 따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상고심의위 등 기구를 대검 예규가 아닌 법률로 규정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위원회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 검찰개혁 방안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죄 후 검찰의 '면피용 상소'를 막기 위해 상고가 기각됐을 경우 상고 이유가 타당했는지 사후 평가를 실질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상소 여부 결정은 대검 지침에 따른 내부 심의절차를 거쳐 법리상 상소 이유 존재 여부, 양형의 적정성 및 상소의 실익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다"며 "상고권 등 행사에 보다 신중을 기하고 그 결정 과정에 공정성·투명성을 제고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용성 기자 up@hankookilbo.com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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