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현지시각) 이란에서 돌아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서부 도시 이슬람칼라에서 신원 등록을 하고 있다. 이슬람칼라/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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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이란에 입국했다. 아내와 나를 포함해 14명이 함께 걸어서 일주일을 이동했다. 한 사람당 3천아프가니(약 6만원)를 (안내자에게) 수수료로 지불했다. 이란 테헤란에서 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사파다슈트 지역에서 집을 임대해 살았다.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일당 3만~3만5천토만(1만~1만1500원)을 벌었다. 일은 매우 힘들었고 허리도 다쳤다. 의사가 일을 그만하라고 했지만 가족 중 나 말고는 돈을 벌 사람이 없었다.”
지난 1일 한겨레와 서면 인터뷰를 한 아프가니스탄인 후세인 이브라히미(29)는 지난 9년 동안 이란에서 살았다. 12년 전 아프간에서 결혼한 아내와 살며 이란에서 4살 딸, 1살 아들을 낳았다. 아이들은 이란에서만 자랐지만, 이브라히미 가족은 지난달 말 이란에서 추방됐다.
2021년 8월15일 탈레반의 아프간 수도 카불 점령으로 시작된 탈레반 재집권이 만 4년을 맞이한다. 탈레반 재집권 뒤 여성 중·고등교육 금지 같은 억압적 조처는 부활했고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한 등 아프간에서의 삶은 쉽지 않다. 더구나 주변국들은 탈레반 재집권으로 아프간 내전이 일단락된 것을 계기로 아프간 출신 이주민 추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브라히미 가족이 이란으로 갔던 이유는 ‘생계’ 때문이었다. 아프간 난민들은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고 외국에 정착해 궂은일을 하며 돈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언어가 통하는 이란으로 가장 많이 건너갔다. 이란의 페르시아어와 아프간의 공용어 중 하나인 다리어는 어휘와 발음이 약간 다르지만 소통이 가능하다.
1979~1989년 소련 아프간 침공 전쟁, 1996년 탈레반의 집권과 공포정치 그리고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아프간 침공과 탈레반 축출, 2021년 탈레반 재집권으로 이어졌던 끝없는 전쟁으로 아프간은 황폐해졌고, 많은 이들이 그처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고, 치안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프간을 떠났다”는 이브라히미도 “전 재산을 팔아 이란 입국 비용을 마련했다. 이란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30일 이란의 동부 도가룬과 맞닿아 있는 아프가니스탄 서부 헤라트주 이슬람칼라에 위치한 난민 캠프를 거쳐 카불로 추방됐다. 국경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데 1인당 450만토만(약 148만원)을 지불했는데, 이 돈이 가족이 가진 전 재산이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4살 딸에게 “우리는 집으로, 다시 아프간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러 간다”고 말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그 역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큰 두려움은 집이 없다는 것이다. 당분간 친척 집에 머물면서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 일자리도 찾아야 한다.”
아프간 중부 고지대에 있는 하자라족 전통 거주 지역인 다이쿤디주 고향 마을로 돌아갈 예정이지만 그곳에는 땅도, 집도 없다. 자녀들이 유치원과 학교 교육을 받게 하고, 아들은 엔지니어가 되고 딸은 의사로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이들 가족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가 머무는 난민 캠프 등 지원 활동을 하는 국제구조위원회(IRC)를 통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란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자 “민감한 질문에는 답변할 수 없다”고 답했다.
5월31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르하르주 토르캄에 있는 난민 수용소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탈레반 전사가 내려다보고 서 있다. 이곳에는 파키스탄에서 송환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수용돼 있다. 토르캄/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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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이란·파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이웃 국가들로 이주한 아프간 난민들이 대거 추방되고 있다. 아프간 난민들은 전세계적으로 시리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수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기준 약 610만명이 전세계에 퍼져 있다고 보는데, 이 중 210만명 이상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란과 파키스탄 등에 나가 있을 것으로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집계하고 있다. 불법 이주까지 포함하면 실제 난민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올해 1월1일부터 지난달 23일까지 이란에서만 168만4500명이 아프간으로 가는 등 귀국하는 이들의 수가 늘고 있다. 이 중 추방된 인원이 60% 가까운 99만명 이상이었다. 또 다른 접경국가인 파키스탄에서도 같은 기간 41만여명이 귀환했고 이 중 5만명이 추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다른 인근 국가인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도 이달 들어 아프간 난민들의 추방을 시작했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 타이바드현의 호세인 잠시디 지사는 매일 3만8천명의 아프간인이 도가룬을 통해 떠나고 있다고 영국 런던에 본사가 있는 언론사 ‘아프가니스탄 인터내셔널’에 지난달 5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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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가 집계한 월별 통계를 보면, 올해 4~6월 이후 이란에서의 추방 건수가 급증하고 있었다. 올해 1월 6만명이던 추방 건수는 5월 11만건, 6월 21만건, 7월은 23일까지 40만건이 넘었다. 이와 관련해 6월13일 이스라엘의 기습 공습으로 발전소와 정부 건물 등 나라의 기반 시설들이 파괴되고 수천명이 숨지거나 다친 이란에서는 정부의 대대적인 추방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아프간과 닿아 있는 동부 국경을 따라 장벽을 건설하고, 의회는 난민들의 이주를 막기 위한 단체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서류 미비로 체포된 이들은 국경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구타당하거나, 마지막 급여나 저축, 집 계약금 등을 돌려받지 못한 채 추방되기도 했다.
이란 사회에서 건설 노동자, 건물 경비, 청소 등 낮은 임금을 받고 궂은일을 해오던 아프간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나빠지는 경제 상황에 더해 이스라엘에 협조해 정보를 팔았다는 음모론이 커지면서 강화·확대됐다.
유엔난민기구가 이란과 파키스탄에서 쫓겨난 난민들에게 한 설문 조사를 보면, 이란에서 온 난민들은 정부의 체포·추방에 대한 두려움은 60% 수준으로 항상 높았다. 그러나 ‘공격당할 두려움’을 언급한 이들의 비중이 6월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23%로 갑자기 늘었다. 파키스탄에서도 2023~2025년 동안 ‘괴롭힘’을 호소하는 이들이 40~60%였다. 올해는 입국 허가를 받는 데 대기가 길어지고 있다고 답한 이들 비중이 80%까지 높아져 난민들을 수용하는 데 더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연구자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는 최근의 변화에 대해 “경제적 필요 때문에 아프간 난민들은 이란 사회에 흡수되어왔다. 그러다 이란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자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이들을 탓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아온 아프간 난민들은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웃 국가에서 다시 아프간으로 돌아오는 난민들에 대한 긴급 대응을 하고 있는 셰린 이브라힘 국제구조위원회 아프가니스탄 대표는 지난달 30일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연말까지 이란에서만 300만명은 귀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이 가족 단위이며, 여성 또는 청소년이 단독으로 귀환하고 있는 사례도 많아 학대나 착취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국경 지역에는 장기 체류 시설이 없고 대부분의 귀환 난민들은 몇시간 정도 등록 절차를 거친 뒤 바로 주요 도시나 고향, 정착 희망지로 이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이끄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압둘 라흐만 라시드 난민귀환부 차관이 7월30일(현지시각)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과 파키스탄 등에서 아프가니스탄인 난민을 추방하는 것은 국제법과 인도주의적 원칙, 이슬람 가치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카불/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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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5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낭가르하르에서 셰린 이브라힘 국제구조위원회 아프가니스탄 대표(중앙)가 국제구조위원회 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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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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