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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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1기와 2기는 완전히 틀립니다. 게임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2기에 걸쳐 대미 통상 협상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근 타결된 관세 협상을 이끈 그는 지난 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는 글로벌 경제 체제 자체를 바꾸려 한다”며, 한국은 이를 헤쳐나가려면 “근본적 체질과 경쟁력 강화, 시장 다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이름의 한·미 조선 협력에 대해서는 공동 생산으로 한국 조선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밝혔다.
―협상에서 가장 위기 의식을 느낀 때는? ‘타결되겠다’는 느낌을 받은 전기는 무엇인가?
“우리는 정치적 상황을 겪으며 다른 나라보다 (본격 협상을) 늦게 시작했다. 워싱턴 도착일인 7월22일에 저녁을 먹는데 미국과 일본의 협상 타결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은 유럽연합(EU)과도 타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상황이다 보니 압박감이 굉장히 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가 돼 악수하고 걸어 나올 때까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어떻게 나올지를 모르니까.”
―트럼프 대통령과 투자 펀드 규모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는 설명도 있었는데, 어느 정도였나?
“트럼프 대통령한테 우리가 (펀드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건 왜 그런지 충분히 설명했다. 설득도 하고. 다행히 당초 생각했던 레인지(범위) 내에서 할 수 있었다.”
―3500억달러 투자·협력 펀드에 관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수익의 90%를 자국이 가져간다고 했다. 정부는 미국으로의 재투자 개념이 아니냐는데, 이런 부분에 합의된 내용은 없나?
“이런 구조의 파이낸싱(자금 조달)은 미국도, 일본도, 우리도 처음이다. 추가 협의할 부분이 많다. 직접투자로 들어가냐, 대출 혹은 보증으로 들어가냐에 따라 또 다르다. 사업이 실제로 되면 더 많은 부분이 구체화될 것이다.”
―펀드 중 1500억달러 규모의 ‘마스가’ 프로젝트에 대해 미국에서는 별도 언급이 눈에 띄지 않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미국의 의지나 협력 계획을 밝힌 게 있나?
“조선에 대해 여러 번 관심을 표현했다. 여러 제조업 중에서도 조선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했다. 미국이 국내적 기반이나 제도 같은 것들이 미비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과 함께 공동 생산 체제를 갖추면서 점차적으로 조선산업을 일으키는 것을 정말로 원했던 거다.”
―미국은 현지의 쇠락한 시설들을 되살려 자국 조선업을 살리는 게 궁극적 목적으로 보여지는데 한국 쪽이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은? 모듈(조립해 완성품으로 만들기 위한 부분 제품)을 만들어 보내는 방식도 거론된다.
“그런 게 공동 생산 시스템이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만들면서 미국 기술자들이 와서 배우고 점차 미국에서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갈 수도 있는 건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그 기간 동안 한·미 생산 시스템이 같이 가면서 우리의 생산 기반도 활용하고 미국의 새로운 생산 기반을 우리 업체들이 만들면서 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한·미 조선업의 전면적 협력이 어려운 이유들 중 하나가 해외 제작 선박을 차단하는 미국 내 규제다. 미국 하원에서 그런 법을 일부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는데, 미국 내 입법이 받쳐줘야 하지 않나?
“미국 정부와 의회도 조선산업을 다시 일으키려면 큰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지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규제 환경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우루과이라운드에 빗대 ‘이제는 트럼프 라운드 시대다’라는 작명까지 했다.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트럼프 1기와 2기는 완전히 틀리고, 게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1기는 철강 등 몇 가지 산업 보호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글로벌 경제 체제 자체를 바꾸려 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체질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 다변화를 할 수밖에 없다. 통상 환경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다음에는 아세안, 인도, 중남미, 아프리카까지도 적극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무역에서 한국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선도적인 국가다. 10월에 아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데, 그런 계기를 활용해 미들 파워 국가로서 글로벌 리더십도 발휘해야 한다.”
―한·미 협상 타결 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100%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유럽연합(EU)이 15% 관세율을 적용받는다면 한국도 최혜국대우 약속에 따라 15%를 최대치로 보면 되나?
“반도체는 행정명령이 나와 봐야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한 합의에는 최혜국대우가 포함돼 있다.”
―정부에 미국 농산물 전담 데스크를 둔다니까 미국산 과일 수입 허가가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검역 절차는 국민의 건강이 관련된 것 아닌가? 우리가 당연히 해야 될 부분을 건너뛴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양국 간 소통 채널 협력 강화 차원에서 일정한 조치(전담 데스크 지정)는 할 필요가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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