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지마 기신 일본 요카이치대 명예교수. 정대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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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떻게 비폭력을 결단했을까?”
기타지마 기신(81) 일본 요카이치대 명예교수는 지난 24일 저녁 7시 광주광역시 동구 비움박물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강의 주제는 ‘동학에서 5·18로: 비폭력 평화 구축과 토착적 근대’였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5·18민주화운동이 동학의 맥을 이은 “비폭력 평화운동”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이번 강연은 비움박물관(관장 이영화)과 참배움터(대표 정경미)가 공동기획한 ‘2025 비움박물관 가을·겨울 인문학 강의’의 첫 순서였다.
2012년 동학 학술회의 참가 계기로
동학~5·18 연구…‘동경대전’ 번역 중
기타지마 명예교수는 아시아종교평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동경대전’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다. 일본 불교 한 종파인 ‘정토진종 타카다파’ 사찰인 쇼센지(정천사) 주지를 지냈고, 전공은 아프리카 현대 문학과 종교철학이다. 진행을 맡은 박맹수 전 원광대 명예교수는 “2012년 원광대 초청으로 처음 한국에 오셔서 동학 학술회의에 참석하셨던 게 인연이 됐다”며 “이후 동학과 5·18민주화운동까지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타지마 명예교수는 5·18로 직진하지 않고, 1950년대의 ‘냉전 시대’ 이야기부터 꺼냈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특징인 이항 대립은 밝음과 어둠처럼 두가지 개념이 서로 맞서서 그 차이를 통해 제각각 의미를 만들어내는 관계다. 그는 “냉전 이데올로기는 자기를 절대화하고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타자를 적대시한다”며 “적대자를 굴복시키려는 폭력적인 방법으로는 이항 대립을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 해답으로 제시한 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다. 기타지마 명예교수는 “민중의 투쟁 방식이 무력에서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전환한 계기는 1975년 베트남 전쟁 종결 이후”라고 봤다. 1980년대 남아프리카에서 극단적인 인종 차별에 대항한 투쟁을 대표적인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제시했다. ‘사람은 타자를 통해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남아프리카 토착적 인간관인 ‘우분투’ 사상과 그리스도교를 ‘현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결시켰던 ‘상황 신학’이 결합한 ‘해방운동’은 적대자와의 화해도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저녁 7시 광주광역시 동구 비움박물관에서 기타지마 기신 일본 요카이치대 명예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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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의 비폭력 운동과 ‘동일한 구조’가 동학이다. 기타지마 명예교수는 “수운 최제우 선생은 하늘님의 부르심을 듣고 ‘자기 안에 신이 있다’(시천주)는 사실을 자각했고, 이는 신을 내면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주체화’로 연결된다”며 “수운의 자각은 서학과 달리 (자기 집단과 개인의 이익만을 좇는)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동학이 타자와의 연대나 개벽을 향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신의 내재화에 대한 자각은 외부 절대자의 가르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동학의 비폭력 사상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기반이 됐다는 게 기타지마 명예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5·18 당시 시민들의 결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등장하는 ‘23살 교육대학생’을 들었다. 소설엔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광주 금남로에서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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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마 명예교수는 “공포심을 넘어서는, 군대의 힘과 같은 정도의 깨끗하고 생생한 ‘무엇’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그에게서 생겨났다”며 “이러한 체험은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것으로, 이는 19세기 중엽 고뇌하던 최제우에게 ‘하늘님’이 말을 걸었던 상황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신과의 일체화로 주체화된 대학생은 ‘더는 두렵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됐고,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는 타자와의 일체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광주 시민들, 군부의 빨갱이 몰이에도
평화적 공생 전환하려고 비폭력 대응
총 든 건, 자기방어 위한 소극적 무력
“12·3때 자발·주체적 시민들 인상적”
이날 한 참석자는 “5·18은 국가폭력에 무기를 들고 저항한 무장투쟁이었다”며 ‘비폭력’과 ‘무장투쟁’의 양립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기타지마 명예교수는 “당시 냉전 체제 때여서 군부가 광주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다”며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평화적 공생으로 전환하려고 비폭력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전쟁 상황처럼 싸운 게 아니고 자기방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었다는 점에서 소극적 무력”이라는 것이다. 기타지마 명예교수는 그런 맥락에서 동학농민혁명도 비폭력 평화운동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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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시민 저항도 비폭력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기타지마 명예교수는 “당시 시민들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게 아니라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순발력 있게 모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강연 통역을 맡은 조성환 원광대 교수(철학과)는 “기타지마 교수님은 당시 시민들의 주체적인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생각하다가 그것을 동학의 비폭력에서 찾으신 것 같다”고 부연했다.
비서구 지역의 이러한 흐름을 그는 ‘토착적 근대’라는 틀로 해석했다. 서구적 근대가 제시한 이항 대립적 가치에 대항해 비서구의 고유한 사상, 종교를 기반으로 서구와는 다른 근대를 발전시켰다는 분석이다. 기타지마 명예교수는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공생을 추구하는 것이 토착적 근대다. 한국의 19세기 동학과 5·18민주화운동에서 토착적 근대의 전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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