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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y] ‘Z세대 봉기냐, 억만장자 선동이냐’... 멕시코 반정부 시위 ‘진실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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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주요 도시 50여 곳에서 15일(현지시각)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주도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지난 11월 2일 ‘죽은 자들의 날’ 행사에서 총 7발을 맞고 숨진 카를로스 만소 우루아판 시장 사건을 규탄하면서 멕시코 정부에 마약 카르텔 조직 폭력단과 부패를 해결할 강도 높은 구제 방안을 요구했다.

    그러나 같은 날 멕시코 정부는 ‘인포데미아(Infodemia)’라는 이름의 특별 조사 보고서까지 발표하면서 이번 시위가 ‘조직적 선동’이라고 선을 그었다. 멕시코 고질병인 폭력과 부패 문제가 만소 시장 암살 사건을 계기로 다시 터져 나온 가운데, 진보 성향 멕시코 정부와 보수 성향 야권이 이번 시위를 두고 ‘진짜 분노’인가, ‘기획된 시위’인지 복잡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16일 엘 우니베르살과 엘 파이스 등 현지 주요 매체에 따르면 Z세대 청년들 주도로 지난 14일 시작한 시위는 15일부터 격화돼 16일 기준 20명이 체포되고 경찰 100여 명을 포함한 120여 명이 다쳤다.

    시위 도화선이 된 만소 시장은 올해 멕시코에서 살해된 일곱 번째 현직 시장이다. 그는 생전 멕시코 카르텔을 향해 철권 통치를 주장했다. 직접 방탄조끼를 입고, 흰색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경찰과 함께 순찰에 나섰다. 카르텔 구성원을 사살하는 경찰에게 포상금을 걸 정도로 폭력과 부패에 강경하게 맞섰다. 그는 인터뷰에서 범죄 조직에 희생된 역대 멕시코 지방 도시 시장들 수난사를 거론하며 “죽지 않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국 총탄을 피하지 못했다.

    시위대는 이날 시위에서 사망한 만소 시장을 엘살바도르에서 갱단을 소탕하는 데 성공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에 비유하며 ‘멕시코 부켈레’라고 불렀다. 반대로 현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추구하는 ‘포용을 통한 안보’ 전략을 “결함 있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과거 수차례 시도했던 ‘마약과의 전쟁’ 같은 강경 진압 방식이 지금과 같은 폭력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며 ‘총알 대신 포옹’으로 불리는 사회적 접근법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AP는 현장 시위대를 인용해 “시위대가 공공 보건 시스템 예산과 안전을 위해 행진했다”며 “시위대는 ‘만소 시장이 용기가 있었기에 살해당했다. 멕시코는 죽어가고 있다’고 외쳤다”고 전했다.

    멕시코 셰인바움 행정부는 이번 시위가 만소 시장을 기리는 순수한 시민 운동이 아니라 야당과 재계, 심지어 해외 세력까지 연계한 9000만 페소(약 70억 원) 규모 ‘디지털 전략 캠페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특별 보고서에서 지목한 배후는 멕시코 억만장자 리카르도 살리나스 플리에고와 미국에 기반을 둔 보수 성향 단체 ‘아틀라스 네트워크’다. 플리에고는 멕시코에서 손꼽히는 미디어 재벌로 ‘텔레비사’ 소유주다. 아틀라스 네트워크는 전 세계적 보수 자유주의, 작은 정부, 시장 중심 경제를 촉진하는 비영리 단체 모임이다.

    멕시코 정부는 이들이 틱톡에 200개, 페이스북 그룹에 360여개 계정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인포데미아 보고서에 따르면 이 중 틱톡 계정 가운데 50개는 시위 직전 10~11월에 생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멕시코 대통령궁이 불타는 가짜 이미지를 유포하고 봇(자동 계정)을 동원해 캠페인 주제를 퍼뜨렸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이날 시위는 이달 초까지 ‘대통령 임기 중단’이 주제였다. 그러나 주최 측은 2일 카를로스 만소 시장 암살 사건 이후 ‘치안 불안’으로 구호를 수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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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서 멕시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 정부에 반대하는 집회 중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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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주장처럼 현지 매체들이 포착한 시위 현장은 ‘Z세대’라는 주도층과 거리가 멀었다. 스페인어권 최대 유력지 엘 파이스는 시 정부 추산 1만 7000여명이 참여한 멕시코시티 집회를 두고 “Z세대 시위라고 하기에는 청년 참석자가 소수였고, 30대 이상이 다수였다”고 했다. 멕시코 진보 성향 매체 라 호르나다는 “기묘하게도 노인이 많은 Z세대 시위”라며 “Z세대는 부모, 조부모, 삼촌 세대보다 수적으로 열세였다”고 전했다.

    현장에는 최근 전 세계 Z세대 시위 현장에 상징처럼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 해적 깃발이 나부꼈다. 동시에 멕시코 국기와 가톨릭 문화를 상징하는 과달루페 성모상, 심지어 스페인 프랑코 독재 시절을 연상시키는 히스패닉 민족주의 깃발까지 등장했다.

    시위 양상도 지역별로 편차가 컸다. 수도 멕시코시티와 제2도시 과달라하라 등 대도시에서는 시위대가 격렬한 유혈 시위를 벌였다. 반면 카르텔 영향력이 센 소노라주 산루이스 콜로라도 같은 지역에서는 집회에 단 8명만 모여 행사가 취소됐다. 캄페체, 케레타로 등에서도 청년 비중은 극히 낮았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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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시위대가 최근 피살된 우루아판 시장 카를로스 만조를 기리는 의미로 모자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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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은 ‘기획 시위’라는 정부 주장을 일축하며 ‘시민 탄압’이라고 맞받았다. 보수 야당 국민행동당(PAN) 호르헤 로메로 대표는 엘 우니베르살에 “정부가 대화 대신 청년들에게 폭력과 가스를 사용했다”며 “정부가 각성한 세대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위 배후로 정부가 지목한 억만장자 살리나스 플리에고는 소셜미디어에 “단 하나의 증거라도 제시해보라”고 반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를 인용해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지지율이 여전히 높지만, 이번 시위로 멕시코인들은 광범위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분석했다. 시위가 기획이든 실제 분노 때문에 일어났든, 멕시코 사회 저변에서 치안과 생계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의미다. 한 시위대는 엘 파이스 인터뷰에서 “시위대는 로봇이 아니고, 실존한다”며 “정부가 배후로 지목한 억만장자 리카르도 살리나스 플리에고가 대선에 나온다면 우리는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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