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 문건 공개 놓고 갈등 폭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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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그동안 공고해 보였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내부의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18일 미 하원에서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트럼프의 연관성이 거론되는 문건(‘엡스타인 파일’) 공개와 관련한 표결에서 대규모 이탈표가 예상되는 것도 이런 균열의 단면이다.
MAGA는 좁게는 트럼프 개인에 대한 팬덤이지만, 넓게는 트럼프 정권을 떠받치는 보수 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미 언론은 MAGA에 6개 이질적 파벌이 존재한다고 본다. ‘반이민·문화전쟁 강경파’ ‘전통 보수·기독교 우파’ ‘친기업·친시장 엘리트’ ‘국방 매파’ ‘온라인 인플루언서 집단’ ‘트럼프 개인에 대한 충성파’ 등이다. 이들이 트럼프라는 축 아래 임시로 결합한 연합체였던 만큼, 집권 1년을 채우기도 전에 경제·무역·대외 개입·이민 문제 등의 이슈마다 균열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액시오스는 “‘누가 진짜 MAGA인가’를 둘러싼 내부의 순수성 테스트가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엡스타인’ 놓고 갈등 분출
‘엡스타인 파일’ 논란은 MAGA 내부 갈등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수감 중 자살한 엡스타인을 둘러싸고 보수층에서는 ‘기득권 유력 인사 성 접대 리스트’가 있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자신을 ‘딥스테이트’(연방 정부 내 기득권 집단)의 희생양으로 묘사해 온 트럼프는 지난 대선 기간 “당선되면 당장 엡스타인 파일부터 공개하겠다”고 해 큰 호응을 얻었지만, 당선 후에는 비공개로 입장을 바꿨다.
이에 대해 보수 논객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는 “내가 표를 준 미국 정부가 ‘사건 종결. 입 다물어, 음모론자야’라는 반응을 보인 건 정말 충격적”이라고 했다. 한때 ‘가장 충성스러운 MAGA 여전사’로 불렸던 마조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은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요구했다가 트럼프로부터 “극좌로 돌아선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트럼프는 파일 공개를 반대하다가 표결을 앞두고 돌연 “공개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입장을 뒤집었는데, 이는 공화당 내부 반발을 더는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규모 이탈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먼저 ‘공개 찬성’으로 선회하며 표결 참패에 따른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그래픽=박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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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대외 개입 놓고도 노선 충돌
지난 6월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직접 타격했을 때도 MAGA의 고립주의·비개입주의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9월 피살된 청년 우파 활동가 찰리 커크 등은 “해외 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던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 공약을 뒤집었다고 정면 비판했다. 반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전통 공화당 매파는 트럼프를 지지했다. 같은 우파 내부에서조차 미군의 대외 개입 여부를 둘러싼 노선 충돌이 벌어진 셈이다.
가자지구 사태 대응을 놓고도 MAGA는 전통 공화당·기독교 우파의 친이스라엘 진영과, 반이스라엘 정서가 섞인 고립주의 진영으로 갈라졌다. 유대계인 보수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적극 옹호하다 고립주의 진영으로부터 ‘가짜 MAGA’라는 공격을 받았다. 반대로 마저리 테일러 그린 의원 등은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이유로 미국의 개입 반대를 공개 표명하며 친이스라엘 진영과 충돌했다.
트럼프가 취임 초 해외에서 온 전문 연구 인력의 장기 체류를 위한 H-1B 비자를 옹호하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필두로 한 실리콘밸리의 친기업·친시장 우파는 적극 지지했으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선임고문 등 고립주의 진영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달 초 트럼프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대학에 60만명의 중국 유학생을 받겠다” “유학생 수를 줄이면 미국 대학은 망한다”고 주장하자 보수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 등은 “중국 유학생은 스파이이며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판했다. 플로리다주의 공화당 정치인 앤서니 사바티니는 “이 정책은 미쳤다. 이렇게 가면 중간선거에서 크게 패배할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트럼프가 지난 9월 H-1B 비자에 10만달러 수수료를 부과하는 정책을 발표했을 때는 실리콘밸리의 친기업 우파가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간선거 때 ‘MAGA 내전’ 가능성도
전문가들은 “우파 진영에서 아직까지 트럼프와 MAGA가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을 고려하면, 지금 드러나는 균열을 곧바로 ‘트럼프에 대한 집단 이탈’로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다만 갈등이 누적될수록 트럼프 이후를 둘러싼 ‘포스트 트럼프’ 경쟁이 조기에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26년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의원 통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같은 지역구에서도 친트럼프 후보, 전통 공화당 우파, 대외 개입 반대파, 테크(기술) 우파 등이 서로 다른 깃발을 들고 경선에 뛰어들며, 공화당 경선 자체가 ‘MAGA 대 MAGA’ 내전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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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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