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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폐지값 부풀리기’ 막겠다더니… 150억 들인 기계, 전국서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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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지는 무게 단위로 거래되는 만큼, 수분이 섞이면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폐지 내 수분 함량을 둘러싸고 원료 업계와 제지 업계 간 갈등이 반복되자, 환경부는 2021년 ‘수분 측정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도입 4년이 지난 현재, 수분 측정기는 현장에서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업계에서는 설치 의무화를 주도한 환경부가 실효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선비즈

    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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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제지 업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수분 측정기 설치 대상 사업장 27곳 중 23곳이 설치를 완료했으나, 이 중 21곳이 장비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활용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수분 측정기는 폐지 원료에 수분과 이물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측정하는 기기다. 압축된 폐지에 전자파를 쏴 내부 수분량을 측정한다. 2021년 11월 환경부의 수분 측정기 의무화 조치 이후 제지 업계는 약 150억원을 들여 전국에 장비를 갖췄다.

    수분 측정기가 의무화된 배경에는 원료 업계와 제지 업계 사이 ‘가격 갈등’이 있다.

    폐지는 고물상→중상→압축상→제지사 순으로 유통된다. 고물상에서 폐지를 모아 중상으로 보내면, 중상이 매입해 압축상에 넘기고, 최종적으로 압축상이 큐브 형태로 가공해 제지사에 원료를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압축상이 종이에 물을 뿌려 무게를 늘리는 ‘가수(加水)’ 행위로 부당 이익을 취하자, 제지사는 수분 함량이 높은 원료에 낮은 단가를 적용하며 맞대응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면서 양측은 가격 협상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분 측정기가 도입됐다. 객관적인 수치로 공정한 가격을 산정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당시 원료 업계와 제지 업계는 수분 측정기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수분 측정기는 기술적 한계로 설치 이후 4년간 사실상 방치 상태로 놓여 있다. 수분 측정기는 전자파를 이용해 수분량을 측정하는데, 폐지 큐브의 크기나 압축 강도에 따라 전파 투과율이 달라져 측정값이 일정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제지업계 한 관계자는 “측정값이 들쭉날쭉해 거래 기준으로 쓸 수 없다”며 “사용하지 않는 수분 측정기 때문에 종이 원료를 운송하는 과정만 복잡해졌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환경부가 수분 측정기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료업계 관계자는 “수분 측정 결과에 따라 이해관계가 즉각적으로 갈리기 때문에 업계 자율 합의만으로는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환경부가 국가기술표준원 등과 협업해 공식 측정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규격 표준화가 논의된다. 또 다른 제지업계 관계자는 “압축상마다 압축 기계 브랜드가 달라 압력까지 완전히 동일하게 맞추기는 어렵다”면서도 “최소한 정부에서 가로나 세로, 높이 폭이라도 맞춰주면 수분 측정기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또한 영세 고물상 관리 강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폐지에 물을 섞는 가수 행위는 고물상 단계에서도 빈번히 발생하는데, 이 경우 압축상은 높은 가격에 원료를 매입하게 되고, 그 부담이 제지사로 전가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폐지의 수분량에 따른 가격 변동은 폐지 전체 가격 체계와 연동된 부분으로, 정부가 직접 조율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업체 간 상호 협의를 통해 적정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면서도 “업계와 논의해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는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기자(xbookleader@chosunbiz.com);박용선 기자(brav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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