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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기고] 고령화 시대, 웨어러블 로봇이 여는 의료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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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비즈

    조남민 엔젤로보틱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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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하는 국가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25년 전체 인구의 20%대에서 2050년에는 40%대가 될 전망이다. 75세 이상 인구도 세 명 중 한 명(33%) 수준까지 증가한다. 이는 일본보다 10년 빠르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보다 2~3배 빠른 속도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의료 재정 부담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 총진료비는 10년간(2013~2023) 2배 이상 늘었고 그중 65세 이상 진료비는 전체의 44.2%를 차지한다. 지난해 기준 노인 진료비는 114조 원으로, 이 수치는 앞으로 20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국민건강보험공단).

    요양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간한 ‘초고령사회 대응 돌봄인력 수요·공급 연구’에 따르면, 2050년 요양보호사 수요가 약 276 만 명 , 공급은 184 만 명 수준으로 최대 91만 5천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의료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전통적인 병원 방문 중심, 인력 의존적 돌봄 체계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주목받는 분야가 바로 피지컬 AI(Physical AI), 그 중에서도 웨어러블 로봇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근육 전기 신호, 관절 각도, 보행 패턴, 균형 감각 등 생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인간의 움직임과 의도를 이해하는 기술이다. 인공지능(AI)이 텍스트·이미지 이해를 넘어 신체 활동을 스스로 해석하는 단계로 확장되면서 AI를 장착한 웨어버블 로봇은 고령화 시대 의료와 돌봄의 핵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수행한 척추 수술 후 환자 대상 연구에서 수술 후 평균 18일 이내에 조기 로봇 재활을 시작해 보행 기능(FAC)과 일상생활 보행 능력(MBI)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향상되었다. 특히 환자들은 낙상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또한 소아 뇌성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JAMA Network Open, 2024)에서도 로봇 보조 보행 훈련이 기존 치료 대비 보행 능력 개선에 효과적임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임상 근거들은 웨어러블 로봇이 재활 기간 단축과 치료 효과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다.

    경제적 효과 역시 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연간 낙상 발생률은 28~35%에 달하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낙상으로 인한 고령층 의료비 지출이 연간 약 5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수치를 바탕으로 국내 65세 이상 고령층 규모에 적용해볼 때 낙상으로 인한 사회·의료적 비용이 연간 수조 원대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산업적 관점에서도 웨어러블 로봇은 단순 로봇 제조 산업이 아니다. 정밀제어·반도체·센서 기술, 의료 임상 데이터, 보험 제도 등 다양한 구조적 요건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중국이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임상 신뢰성과 인증 체계가 요구되는 웨어러블 로봇 분야에서는 선진국 중심의 시장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 정밀 제어 기술, 병원 네트워크, 건강보험 제도를 모두 갖춘 드문 국가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 확대를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도 중요하다. 현재 보험 체계는 장비 도입 비용 중심으로 설계되어 회복률 개선, 재활 기간 단축, 요양비 절감 등 기술의 실제 가치를 반영하기 어렵다.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이미 웨어러블 로봇의 일부 항목을 보험에 편입하고 있으며, 임상 데이터 기반 성과 평가를 도입해 환자 회복률과 비용 절감 효과를 제도화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기술의 목적은 인간을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스스로 삶을 주도할 수 있는 신체적 자유를 지키는 일이다. 인간이 자신의 신체적·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도록 하는 ‘존엄의 지속 가능성’을 확대하는 기술이 웨어러블 로봇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하는 동시에 기술·의료·데이터·제도라는 네 가지 자산을 모두 갖춘 유일한 국가다. 이 역량을 모을 수 있다면 웨어러블 로봇은 의료기기를 넘어 국가의 미래 경쟁력, 나아가 인류 복지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그것이 한국이 만들어야 할 다음 세대의 경쟁력이며 우리 시대가 후대에게 남겨야 할 따뜻한 혁신의 유산이다.

    조남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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