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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2 (월)

    3D프린터로 내 얼굴 꼭 맞는 안경 뚝딱,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혁신 사례 꼽은 K-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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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업 취중잡담] ‘10분 완성’ K-안경의 착각, 첨단 기술로 낡은 산업 혁신하는 브리즘(Breezm)

    조선일보

    3D스캐닝·프린팅, AI 기술로 맞춤형 안경을 만드는 '브리즘(Breezm)' 운영사 (주)콥틱의 성우석 대표(왼쪽)와 박형진 대표. /더비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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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 하버드 경영대학원(HBS) 후안 알카세르(Juan Alcácer) 석좌교수가 서울의 한 안경원을 찾았다. 한국의 안경 브랜드 브리즘(Breezm)이 HBS MBA 학생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 프로그램 참여 기업으로 적합한지 면접을 보기 위해서였다.

    오른쪽 눈이 약시(弱視)인 후안 알카세르 교수는 브리즘의 3D 스캐닝·프린팅으로 만든 맞춤형 안경을 써보고는 ‘안경이 이렇게도 편할 수 있구나’ 처음 느꼈다. 브리즘이 HBS의 ‘케이스 스터디’ 기업으로 확정된 순간이었다.

    3D 맞춤형 안경 브랜드 브리즘을 운영하는 ㈜콥틱의 박형진·성우석 공동 대표는 최근 서울 성수동에 새로운 깃발을 꽂았다. 산업용 3D 프린팅으로 안경을 출력하고 제조하는 파운드리(Foundry) 지점을 개관했다. 이곳을 찾아 박형진·성우석 공동 대표를 만났다.

    ◇낡은 안경의 비효율성 혁파···‘재고 0′ 맞춤형 생산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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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즘 매장에서 3D 스캐너로 얼굴 형태를 측정하고 안경테를 고르는 모습. 시력 검사 이후 진행되는 과정이다. 3D 스캐너로 얼굴 지표를 수집, 분석한다. 이후 안경테 디자인을 고르고 내 얼굴형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을 거친다. 가상 시착을 하면서 코받침 형태 등 세부적인 안경 디자인을 확정하면 3D 프린터로 자료를 전송한다. /콥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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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즘은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 박형진 대표와 고려대를 졸업한 회계사 성우석 대표가 2017년 공동 창업한 회사다.

    박형진 대표는 이전에 안경 프랜차이즈 ‘알로(ALO)’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는데, 안경 산업의 고질적인 비효율과 비합리성에 깊은 아쉬움을 느껴 왔다. 그가 해결하고자 했던 안경 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획일화된 제품’과 ‘재고’였다. 사람의 얼굴은 모두 다른데, 공장에서 찍어낸 획일적인 안경테에 사람의 얼굴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공급자 중심의 비합리성이 있었다. 또 팔릴지 알 수 없는 수천 장의 안경테를 쌓아두고 시작하는 비효율적인 구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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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용 3D 프린터로 안경을 출력한 모습. 출력해서 나온 안경테는 흰색 또는 회색이다. 출력된 안경테를 후처리 기기로 옮겨 가루를 털어내고, 연마, 염색 과정을 거친다. /콥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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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마침 성우석 대표가 회계사를 그만두고 2015년 3D 프린팅 대행 업체를 창업해 시제품 목업(Mock-up: 실물 모형)을 의뢰받아 제작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대학 후배 소개로 성 대표를 만났는데, 3D 프린터로 안경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보니 안경 품질이 상당히 좋았고, 이 방식대로라면 안경 산업의 비효율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대표는 3D 스캐닝·프린팅을 활용한 ‘선 주문 후 제작’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주문을 받고 안경을 만들기 때문에 악성 재고가 0이다. 브리즘에선 안경을 쌓아 놓지 않는다. 전시용 안경테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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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우석 공동 대표(왼쪽)와 박형진 공동 대표가 3D 프린터로 출력한 안경테 더미를 가리키며 웃고 있다. /더비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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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즘에서 안경을 맞추고 제작하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3D 스캐너에서 얼굴 형태를 분석한다. 적외선이 얼굴에 1221개 좌표를 찍은 뒤 주요 지표를 18개로 나눠 수치를 잰다. 미간 너비, 눈 크기, 코 각도, 콧대 높이, 귀 높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AI가 지표를 분석해 가장 적합한 안경테를 추천한다. “디자인이 80여개, 색상과 크기는 10가지, 이외에 안경 다리와 코 받침까지 조합하면 65만가지 조합이 가능해요. 얼굴 크기에 맞춘 건 물론이고, 나만의 안경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 3D 프린터에 세세한 수치가 적힌 자료를 보낸다. 3D 프린터가 안경테 소재인 ‘폴리아미드’를 미세한 가루로 분사해 한 겹씩 쌓아 3000번을 반복해 안경테를 만든다. 이후 안경에 묻은 가루를 털고, 연마와 염색 과정을 거친다. 내 시력에 맞는 맞춤 렌즈를 장착해 미세 조정하면 끝이다. 안경테 자체를 만드는 것은 10분이면 가능하지만, 렌즈 장착까지 모든 과정을 거치는 데는 7일 전후 시간이 소요된다. “안경테 무게는 7g으로 동전 1개 무게에 불과합니다. 렌즈를 장착해도 15g 정도예요. 일반 뿔테 무게만 20g인 데 비해 무척 가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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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즘에서 맞춘 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후안 알카세르 HBS 석좌 교수. 자세히 보면 오른쪽과 왼쪽 안경 다리 높이가 다르다. 코받침 위치 역시 양쪽이 다르다. 알카세르 교수의 얼굴형에 맞춘 안경이기 때문이다. /H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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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 경영대학원(HBS) 홈페이지에 올라온 브리즘 케이스 스터디 리포트 일부. /H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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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쪽 귀 높이가 달라도, 눈 크기가 달라도 브리즘에선 내게 꼭 맞는 안경을 맞출 수 있다. 이 덕분에 까다로운 안경 소비자가 브리즘을 많이 찾는다. 작년 브리즘을 찾았다가 첫눈에 반해버린 HBS의 후안 알카세르 교수는 오른쪽 눈의 시력이 나쁘다 보니 눈 주위 근육까지 약해졌고, 오른쪽과 왼쪽 얼굴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었다. “교수는 시력이 굉장히 중요한 직업입니다. 가까이에서 책 봐야 하고, 강의 중 판서 해야 하고, 수업 듣는 학생도 바라봐야 합니다.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 시야가 깨끗해야 하죠. 알카세르 교수는 여태껏 맞는 안경을 찾지 못해서 오랜 시간 고생했다고 합니다. 브리즘에서 맞춤 안경을 만나고 나서야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됐다며 좋아했습니다.”

    브리즘의 안경 제조 방식은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3D 프린터가 안경을 만들고 남은 파우더는 다음 안경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재활용이 된다. “기존 안경 산업에선 뿔테 모양대로 안경을 잘라 만들고 나머지 원재료 90%를 폐기했어요. 브리즘에선 안경 모양대로 가루를 분사해 만들어 애초부터 원재료가 적게 들지만, 가루를 재활용한 덕분에 기존 안경 제작 시스템보다 탄소배출량을 80% 줄였습니다.”

    ◇‘빠른 K-안경’의 허점을 채우는 정밀한 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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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우석 공동 대표. 회계사이자 3D 프린터 전문가로서 재무와 3D 프린팅 안경 제조를 담당한다. /더비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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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대표는 요즘 맞춤형 안경 제작에서 나아가 ‘정확한 광학적 피팅’을 핵심 경쟁력으로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브리즘에선 안경을 맞추려면 사전 예약이 필수다. 안경사가 1대1로 상담하기 때문이다. 3D 스캐닝으로 얼굴 형태를 분석하고 안경테 선택하는 데만 30분이 걸린다. 여기에 시력 검사와 렌즈 선택을 위한 상담 과정까지 더하면 1시간이 훌쩍 넘는다. “보통 우리가 시력을 가늠할 때 말하는 ‘마이너스 7.5’와 같은 내용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안경원에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인데요. 브리즘에선 안경 착용 습관부터 시작해 내 눈 상태가 어떤지, 근시와 난시가 얼마나 심각한지 꼼꼼히 그리고 쉽게 알려드려요. 저희 브리즘에 데이트 코스 삼아 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브리즘의 맞춤 안경 제작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의 안경원은 미국과 달리 처방전이 없어도 빠르면 10분, 길어도 1~2시간 만에 안경을 맞출 수 있는 ‘초고속 서비스’로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칭찬받는다. 그런데 브리즘은 이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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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진 공동 대표. 브리즘에서 마케팅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P&G, 디즈니 등에서 일한 마케팅 전문가다. /콥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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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속도’가 아닌 ‘정밀도’가 중요하다고 다시 반론한다. 노안 교정용 누진 다초점 렌즈 같은 기능성 렌즈는 최적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눈과 렌즈 사이의 거리, 안경의 경사각, 렌즈 중심과 눈동자 위치가 1mm 단위로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한국 안경이 10분 만에 안경을 맞춰주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는 표준화된 기성 안경테를 대충 휘거나 꺾어 맞추는 경우가 많아 정교한 광학적 기준을 희생한 결과입니다.”

    브리즘은 이러한 광학적 오차를 없애는 데 도전한다. 3D 프린팅으로 사람 얼굴에 오차 없이 맞춘 안경테는 기능성 렌즈가 제 기능을 100% 발휘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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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력 검사 후 적합한 렌즈의 기능과 설계 특성에 대해 상담 중인 모습. /콥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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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즘은 최근 렌즈 전문 회사 ‘에실로(Essilor)’와 함께 브리즘 전용 렌즈를 개발했다. 노안을 위한 누진 다초점 렌즈가 대표적이다. “누진 다초점 렌즈가 어지럽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생활 방식에 따라 시야 영역을 조정할 수 있고, 사용자는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여태까지 이런 걸 제대로 설명해 주는 안경원이 거의 없었어요. 브리즘에선 노안 고객의 90% 이상이 누진 다초점 렌즈 적응에 성공했습니다.”

    안경을 꼼꼼히 맞춰주는데 대단한 고가는 받지 않는다. 브리즘은 맞춤형 제품은 비쌀 것이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재고 없는 구조를 바탕으로 안경테 가격을 14만8000원부터 정찰제 판매한다. 렌즈까지 포함해 20만원대 이하 가격에서도 안경을 맞출 수 있다. “독일, 중국에도 맞춤형 안경 브랜드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안경테를 만들어 납품하는 게 끝인데도 가격대가 100만원 선입니다. 저희는 시력 교정, 맞춤 렌즈·안경테 제작 등 전 과정을 담당하는데도 가격이 아주 합리적이에요.”

    ◇매출 100억···‘파운드리 성수’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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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박형진, 성우석 공동 대표. 3D 프린터로 출력한 테니스 공을 들고 있다. /더비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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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즘의 2024년 연 매출 108억원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유치한 누적 투자액은 195억원이다. 세계가전전시회(CES) 2022에서는 혁신상을 받았다. HBS 정규 교재에 채택되기도 했다.

    9월 문을 연 파운드리 성수점은 브리즘의 비전을 담고 있다. 얼굴 형태를 측정하는 3D 스캐너 외에 안경을 출력하는 3D 프린터, 가루를 제거하고 재활용하는 후처리 기기까지 갖추고 있다. 3D 프린터가 안경테를 출력하고 완성하는 전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성수에 있는 3D 프린터는 4대면 4명의 인력으로 연간 15만장의 안경테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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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문을 연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점. 오렌지색이 인상적이다. IBM이 196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문을 연 데이터 센터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인테리어다. 당시 IBM이 생소했던 컴퓨터 기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터 센터를 대중에게 개방했는데, 브리즘도 안경 제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점에서 그 정신을 이어받아 오렌지색으로 디자인했다. /더비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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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찾아간 날 파운드리 성수점 직원들은 한창 3D 프린터를 점검 중이었다. 파운드리 내부는 따뜻했고 천장에서는 미세한 공기방울이 흩뿌려졌다. 성 대표가 파운드리 시설을 안내하며 설명했다. “3D 프린터가 매우 민감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야 하고요. 굳은 파우더나 이물질도 제거해야 합니다. 온·습도에도 예민합니다. 파운드리 내부는 365일 온도를 섭씨 24~26도, 습도를 40%로 유지합니다.”

    한국에선 현재 15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해외에선 미국 뉴욕 맨해튼에 지점이 있다. “인종이 다양한 미국에서 반응이 뜨겁습니다. 코가 너무 높고 커서 평생 안경 없이 콘택트렌즈만 끼던 유대인 고객이 브리즘에 와서 안경을 맞춰가는 사례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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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점에 진열된 안경테. 모두 3D 프린터로 출력해 만든 안경테다. 브리즘은 선주문 후제작 시스템으로만 안경을 만들기 때문에 진열용 안경은 판매하진 않는다. /더비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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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32년 미국 시력 보정 시장 규모는 100조원을 넘길 예정이다. 브리즘은 곧 미국 앱스토어에 아이폰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한다. 매장에서 하던 얼굴 형태 분석을 아이폰 카메라로 할 수 있게 된다.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안경을 주문하고 집으로 배송받는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브리즘이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있는 건 안경테만은 아닙니다. 더 선명하고 건강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미래의 청사진도 출력하는 거에요.”

    [이연주 더비비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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