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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트럼프, 사우디에 ‘AI 칩’ 빗장 풀어… 오일머니, 美 반도체 동맹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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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 패권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 손잡고 ‘데이터 제국’으로 변신을 꾀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동맹국에도 쉽게 내주지 않았던 최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빗장을 사우디에 풀기로 했다. 석유 고갈 이후를 대비하는 사우디의 자본력과 중국을 견제하며 시장 확대를 노리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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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18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양자 회담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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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현지시각)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회담을 갖고 사우디에 대한 첨단 반도체 판매를 승인할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사우디에 ‘일정 수준의 칩’ 판매가 이뤄질 것”이라며 “우리는 현재 그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확인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일정 수준의 칩은 통상적으로 엔비디아 H100 같은 고성능 AI 칩을 의미한다. 미국은 2022년부터 엔비디아 H100처럼 최첨단 반도체를 적용한 AI 가속기가 중동 국가를 경유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을 우려해 수출을 엄격히 통제다. 오로지 한국 같은 미국 동맹국에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수출을 허용하고, 중국과 이란 러시아 등 적대국에는 여전히 수출을 막고 있다. 이 가운데 트럼프 발언은 기존 통제 체계에서 한국처럼 미국 동맹국에 예외적인 승인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엔비디아, AMD 등은 새 큰손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빈 살만 왕세자가 “단기간에 반도체에만 500억 달러(약 73조원)를 쏟아부을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미국 반도체 업계는 ‘제2의 중동 특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번 협력 중심에는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만든 AI 기업 휴메인(Humain)이 있다. 휴메인은 사우디가 포스트 오일(post oil) 시대를 대비해 만든 국영 기술 기업이다. 단순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국부펀드 산하 여러 기술 조직을 통합해 만든 거대 기업으로, 아람코 디지털(Aramco Digital)을 이끌던 타레크 아민이 초대 CEO를 맡았다. 아민 CEO는 일본 라쿠텐 모바일에서 세계 최초 완전 가상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통신업계의 이단아로 불렸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하드웨어 인프라 구축과 소프트웨어 운용에 모두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민 CEO는 이번 빈 살만 왕세자 방미 기간에 맞춰 아마존, AMD, 일론 머스크 xAI 등 미국 간판 테크 기업들과 연쇄적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계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휴메인은 2030년까지 고성능 AI 칩 40만 개를 확보하고, 앞으로 6.6기가와트(GW) 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공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6.6GW는 약 495만 가구(미국 기준)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다.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상 중인 1000억 달러(약 135조원) 규모 초대형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Stargate)’에 버금간다. 휴메인은 이미 엔비디아 칩 1만 8000개에 대한 수입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민 CEO는 “사우디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AI 인프라 공급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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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참석 만찬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립자가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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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사우디는 여전히 원유 수출국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비전 2030’ 정책을 밝히면서 AI와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2023년 하반기부터는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저비용 고효율’ 연산 능력을 제공하겠다고 실리콘밸리에서 홍보전을 시작했다.

    최근 생성형 AI 열풍으로 전력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사우디 제안은 거부하기 힘든 카드다. 블룸버그는 국제금융공사(IFC) 오비나 이시아딘소 데이터센터 책임자를 인용해 “사우디는 토지, 에너지, 인건비가 저렴하고, 파격적인 정부 인센티브까지 더해져 다른 국가보다 20~30% 저렴하게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최첨단 반도체 빗장을 푼 배경에도 사우디를 확실한 ‘미국 기술 블록’으로 편입시켜 저렴한 인프라를 활용하겠다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AI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사우디는 그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미국은 사우디에 최첨단 칩을 주는 대가로 중국과 기술 단절을 요구했다. 현지 매체 아랍뉴스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는 사우디가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중국과 AI 기술 협력을 제한한다는 안보 조건이 포함됐다. 사우디 국부펀드(PIF) 관계자는 “미국이 요구한다면 중국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며 미국 측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데니스 로스 연구원은 로이터에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해 미국과 즉각적으로 협의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다”며 “미국은 안보부터 에너지, AI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사우디를 미국 쪽에 묶어두고 중국을 배제하려 한다”고 말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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