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 인수 후 서울에서 운영했던 사무실 입구. |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와 13년째 이어온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완승할 수 있었던 것은, 2022년 나온 원래의 판정이 잘못된 증거를 채택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19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론스타 ISDS 취소위원회가 우리 정부 승소 결정을 한 판정문을 분석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2023년 7월 론스타가, 9월 한국 정부가 판정 취소신청 제기
앞서 론스타는 2012년 정부를 상대로 46억8000만달러(약 6조9000억원)를 배상하라며 ICSID에 ISDS를 제기했다. 2003년 인수한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할 때 정부(금융위원회)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승인 절차를 지연시켰으므로 피해를 배상하라는 주장이었다.
2022년 ICSID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가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싸게 살 수 있도록 매각 승인을 지연시켰지만,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한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외환은행 매각 가격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론스타가 손해액의 50%는 자체 부담해야 한다고 봤다. 이렇게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우리 정부에 2억1650만달러와 이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현재 환율로 약 4000억원 규모다.
론스타 측은 ICSID에 2023년 7월 패소한 95.4% 부분에 대해 ISDS 판정 일부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정부는 같은 해 9월 정부가 패소한 4.6% 부분에 대해 판정 일부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ICSDI 취소위원회는 18일(현지 시각) 론스타 측의 취소 신청을 전부기각하고, 정부 측 취소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원 판정에 따라 4000억원을 배상해야 할 책임은 사라졌고, 론스타로부터 소송 비용 73억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과천=뉴스1) 이재명 기자 =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19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 청사에서 론스타 ISDS 취소 결정 선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19/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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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ICC에선 “금융위 압박 없었다” ICSID에선 “압박 있었다”
우리 정부는 원 판정에서 ‘금융위의 하나금융 매각 승인 지연이 가격 인하를 위한 자의적 권한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부분이 잘못됐다고 보고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앞서 론스타는 2016년 8월 하나금융을 상대로 국제상업회의소(ICC)에 국제상사중재를 제기했다. 론스타는 당시 ‘금융위의 외환은행 매각 가격 인하 압력이 사실 존재하지 않았는데, 하나금융이 자신들을 속이고 매각 금액을 낮추도록 강요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이날 오후 정부과천청사 브리핑에서 “론스타는 ISDS 중재 절차에서는 금융위의 부당한 압력 때문에 매각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며 “모순된 주장을 펼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ICC는 2019년 론스타에 상사중재 패소 판정을 하면서, 금융위가 외환은행 가격 인하에 개입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 국장은 “ICC 중재 절차는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의 분쟁이었고, 한국 정부는 그 절차에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았다”며 “추정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론스타는 ICSID에 제기한 ISDS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가격 인하에 개입했다’는 ICC의 판정을 인용하려 했다. 우리 정부는 론스타 ISDS 판정부가 별건인 ICC의 판정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주요 근거로 인정됐다.
2010년 11월 25일 당시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과 론스타 존 그레이컨 회장이 영국 런던 시내 그로버너 호텔에서 외환은행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식을 마친뒤 악수하고 있다.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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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하나금융 ICC 상사중재에 우리 정부 참여 안 해… 적법절차 위배
ICSID 취소위원회는 2년 뒤 원 중재판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채택하고, 이에 의존해 금융위의 위법행위와 국가책임을 섣불리 인정한 것은 국제법상 근본적인 절차 규칙인 적법절차의 원칙(due process)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원 중재판정부가 적법절차에 위배된 증거를 토대로 금융위의 위법행위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금융위의 위법행위, 국가책임, 인과관계 및 론스타 측의 손해를 인정한 부분이 연쇄적으로 모두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적법절차 원리는 모든 국가 작용은 정당한 법률을 근거로 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발동돼야 한다는 원리를 말한다. 전 세계 많은 국가의 법률 체계에 반영된 법철학적 원리다.
우리 정부는 ICC 중재 판정에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중재 판정을 인용하면 한국의 절차상 권리가 박탈된다. 법무부는 이번 취소 결정에 대해 “‘국제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된 증거는 국가책임 인정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론스타, 새 중재판정부에 다시 중재신청 제기할 가능성도
다만 정부와 론스타 간 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ICSID 협악에 따르면 중재판정 취소 후에도 중재 신청이 가능하다. 정 국장은 “론스타 측이 이번에 취소된 쟁점을 처음부터 다시 다투려 새로운 중재판정부에 2차 중재 신청을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향후 론스타가 어떤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법무부는 그간 축적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대응하겠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국제 투자 분쟁에 철저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덕호 기자(hueyduc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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