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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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자위대 방공미사일을 필리핀에 수출하기 위한 비공식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군비 증가, 무기 수출 제한 완화, 비핵 원칙 재검토 등 세 개의 축을 바탕으로 군사 대국화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1일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 말을 따 “다카이치 정부가 자위대 방공미사일 ‘03식 중거리 지대공유도탄(SAM)’을 필리핀에 수출하기 위한 비공식 협의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장비 도입에 필리핀 정부가 먼저 관심을 보였고, 이후 양국 정부 관계자가 수출 가능성 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방위 장비 수출에 적극적인 정부의 자세가 선명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현재 일본은 필리핀과 수출 협상이 타결돼도 현행 관련 규정 아래서 무기 수출이 불가능하다. 일본 정부는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무기·방위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한 ‘무기 수출 3원칙’을 발표했다. 지난 2014년 당시 아베 신조 2차 내각 때 ‘무기 수출 3원칙'을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으로 개정해 일부 방위 장비 수출 길을 텄지만, 이후에도 운용 지침을 통해 구조·수송·경계·감시·소해(수중 무기 제거 등) ‘5가지 유형’에 한해서만 방위 장비 수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다카이치 정부가 ‘5유형’ 규정을 내년 상반기 폐지한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필리핀과 공격형 무기 수출 협상을 사전에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은 국회 동의 없이 다카이치 총리가 의장을 맡는 정부 국가안전보장국(NSS)에서 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패전 뒤, 무기 수출에 엄격한 자세를 취해왔던 일본 역대 정부의 방침을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입장에 맞춰 바꾸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도통신은 “국회의 충분한 관여 없이 ‘5유형’에 대한 재검토나 살상 능력을 갖춘 미사일 수출이 무리하게 추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실제 다카이치 정부는 집권 한달 남짓 만에 무기 수출 제한 완화 정책과 함께 방위비 추가 증액, 비핵 3원칙 재검토 등을 추진하며 군사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앞서 지난 10월 취임 첫 국회 소신표명연설에서 그는 “일본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올해 안 ‘방위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달성’ 목표를 공식화한 바 있다. 원래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방위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증액을 목표로 했는데, 돌연 이를 2년이나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일본 방위비 예산은 국내총생산 대비 1.8% 수준이다.
또 일본 정부는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오던 일본 역대 정부의 ‘비핵 3원칙’도 흔들 조짐을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비핵 3원칙 견지 여부'를 묻는 말에 “이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표현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놨다. 사토 에이사쿠 정부 때부터 유지해오던 일본 역대 정부의 비핵 3원칙은 ‘핵을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인데, 다카이치 총리는 이전부터 ‘반입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미국의 핵 억지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논리로 재검토 주장을 해왔다.
다카이치 총리의 이런 태도에 대해 일본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지향하는 안보 정책에 따라, 방위비 추가 증액과 무기 수출 제한 대폭 완화뿐 아니라 비핵 3원칙 재검토까지 검토되고 있다”며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원폭 피해의 참화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아래 오랫동안 지지받아온 원칙들을 특정 정권의 판단으로 가볍게 바꾸는 건 용납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신문은 “다카이치 정부가 평화 국가로서 일본의 모습을 더는 변질시키는 것에 대해 강력히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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