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속기는 모터의 회전 속도를 줄여 힘(토크)을 증폭시키는 부품으로 로봇 전체 원가의 약 30~40%를 차지한다. 그동안 정밀 감속기 시장은 일본과 중국 기업이 장악해 왔으나, 일본산은 긴 납품 기간과 높은 가격이, 중국산은 정밀도와 내구성 문제가 약점으로 꼽혀왔다. 국내 기업들은 빠른 납기와 품질 대비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워 시장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에스피지의 감속기 제품군./에스피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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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업계에 따르면, 로봇용 정밀 감속기 3종(유성·하모닉·사이클로이드)을 모두 생산하는 에스피지는 감속기를 통합한 로봇 구동 모듈 액추에이터 양산에 막바지 속도를 내고 있다. 유성 감속기는 4족 보행 로봇처럼 고출력이 필요한 이동 장치에 주로 쓰이고, 하모닉 감속기는 정밀도가 중요한 협동로봇 관절에 사용된다. 사이클로이드 감속기는 충격 하중에 강해 대형 산업용 로봇의 관절에 주로 적용된다.
에스피지는 시제품 개선을 거쳐 내년 상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엑추에이터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최근 미국 로봇·빅테크 기업들이 공급망 불안정성 등을 이유로 중국산 로봇 부품 사용을 중단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대표적으로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양산을 앞두고 핵심 부품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 의지를 내비쳐 왔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에스피지는 주력 제품인 정밀 감속기에 자체 모터 기술을 결합해, 단품 공급에서 고부가가치 모듈 단위 공급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나선 것이다.
에스피지 관계자는 “미국 기업들의 중국산 배제 선언으로 국산 부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이러한 반사 효과를 빠르게 누리려는 전략으로, 내년 상반기 미국 수출 및 국내 공급을 목표로 엑추에이터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제품 기준 중국산 엑추에이터에 비해 정밀도를 2배 이상 높이고, 무게는 10%가량 줄였다”고 말했다.
국내외 주요 로봇 기업들과의 협업도 확대 중이다. 현재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동로봇과 양팔로봇 전 모델에 감속기를 단독 공급 중인 에스피지는 4족 보행 로봇과 자율주행로봇(AMR) 등으로 공급 범위를 넓히고 있다. 또한 미국 주요 로봇 메이커의 4족 보행 로봇에도 정밀 감속기 공급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밀 감속기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에스피지의 이익도 개선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스피지의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올해 로봇 감속기 매출은 100억원대 후반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내년엔 로봇 감속기 사업에서 300억원대 매출이 예상돼, 회사 설립 이래 처음으로 이 부문 흑자전환에 성공할 전망이다.
하모닉 감속기를 제조하는 에스비비테크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에스비비테크는 독자 치형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고객사 맞춤 제작을 하는 것이 강점”이라며 “일본 경쟁사 대비 70% 수준의 공급가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데다 협동로봇 시장 침투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산화 대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산업용 유성 감속기를 주력으로 하는 우림피티에스는 로봇용 정밀 유성 감속기와 사이클로이드 감속기 라인 등을 확장 중이다. 자동차용 변속기 부품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디아이씨는 기어 가공 기술을 응용해 로봇 감속기 분야 진입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국산 감속기 제품이 글로벌 기업들의 대체제로 떠오르면서 선두 기업들의 주가도 널뛰고 있다. 11월 말 기준 에스피지 주가는 올해 들어 약 121% 급등했고, 에스비비테크와 우림피티에스 주가는 각각 약 48%, 53% 올랐다.
다만 증권가는 로봇 부품 산업의 경우 전방 산업의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재모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정밀 감속기 사업은 로봇 시장의 본격적인 성장과 밀접하게 연동돼 있다”며 “글로벌 경기 둔화로 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위축될 경우 대규모 매출 확대가 예상보다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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