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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로봇이 온다

    [인터뷰] 셸·BP가 선택한 로봇개 기업 애니보틱스 수 양 총괄 “韓 정유·철강·반도체 산업에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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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에서 로봇 산업의 승패를 가를 곳이 있다면, 단연 한국이 최상위에 있을 겁니다. 한국은 로봇 밀도 세계 1위의 혁신 국가이자, 로봇 기업으로선 반드시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치열한 격전지입니다.”

    스위스의 사족보행 로봇 전문 기업 애니보틱스가 한국 시장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만난 수 양 애니보틱스 아태지역 세일즈 총괄은 한국 시장을 글로벌 로봇 경쟁의 전략적 요충지로 정의하며 이처럼 말했다.

    애니보틱스의 주력 로봇 ‘애니멀(ANYmal)’은 이름 그대로 어디든 출동한다. 500도가 넘는 고열과 굉음, 눈에 보이지 않는 유독 가스가 발생하는 제철소 용광로 구역이 애니멀의 주 활동 무대 중 하나다. 작업자가 방호복을 입고도 접근하기 힘든 이곳을 애니멀은 자율적으로 이동하며 열화상 카메라로 배관의 미세한 균열을 찾아낸다.

    산업 현장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결과, 전 세계 산업 험지 곳곳에 200여대의 애니멀이 공급됐다. 한국 시장에서는 반도체, 철강, 석유 및 화학, 발전·전력 설비등 주요 산업군 기업들과 구체적인 도입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양 총괄은 “한국은 대규모 제조 설비가 집약된 글로벌 제조 강국”이라며 “갈수록 엄격해지는 안전 규제와 2033년으로 예고된 심각한 인력난은, 한국 기업들이 고도화된 점검 로봇 도입을 서두르게 하는 결정적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양 총괄과의 일문일답.

    조선비즈

    수 양 애니보틱스 아태지역 세일즈 총괄이 지난달 27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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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보틱스는 어떻게 출범하게 됐나

    “애니보틱스의 뿌리는 2009년부터 로봇 보행 기술을 연구해 온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로봇시스템연구소다. 2016년 분사 당시 우리의 지향점은 처음부터 ‘실전형 로봇’으로 명확했다. 통제된 실험실을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극한의 산업 현장에서도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그 목표를 어떻게 실현했나

    “2019년 사족보행 로봇으로는 처음으로 시뮬레이션 기반의 인공지능(AI) 강화 학습을 업계 최초로 실제 로봇에 오차 없이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현실에서 수집하려면 수년이 걸릴 방대한 보행 데이터를 가상 공간에서 빠르게 학습시킨 뒤 이를 실제 로봇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당시 학계에서도 난제를 해결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덕분에 로봇은 사람이 일일이 코딩할 수 없는 미세한 균형 감각을 스스로 터득해, 미끄러운 기름 바닥이나 거친 돌밭에서도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됐다.”

    —산업 현장의 수요가 실제로 높나

    “반응은 뜨겁다. 산업 현장 고객들은 철저히 ‘투자 대비 수익(ROI)’을 중시하는데, 애니멀은 인건비 절감과 가동 중단 예방, 안전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평을 받는다.

    셸과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을 필두로 세계 1위 화학기업 바스프, 미국의 에너지·산업 솔루션 기업 GE, 독일 엔지니어링 기업 지멘스 등이 핵심 고객이다. 이외에도 유럽 최대 스테인리스강 제조사 오토쿰푸, 일본 전력기업 J-파워 등 다양한 산업군의 선도 기업들이 우리 솔루션을 도입해 사용 중이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지난해 5000만달러(약 735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고, 현재 200여명의 임직원이 기술 고도화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 시장을 ‘격전지’라고 표현했는데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우선 한국은 ‘혁신 수용성’이 높다. 근로자 1만명당 로봇 대수가 1012대(2023년 기준)로 세계 1위라는 통계가 보여주듯 신기술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둘째는 생산 시설의 규모가 크다. 한국은 작은 공장이 산재하기보다, 거대한 설비가 한곳에 통합된 대규모 생산 기지가 주를 이룬다. 이런 방대한 시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로봇이 필수적이다.

    마지막 셋째는 인력난이다. 인구 구조 변화로 2033년까지 약 수십만명의 산업 인력 부족이 예견되는 등 상황이 절박하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한국은 로봇 솔루션을 적용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장이다. 이 격전지에서 로봇의 가치를 증명하면 세계 어디서든 통할 것이라 본다.”

    —주로 어떤 산업 분야를 공략하고 있나

    “환경이 가혹하거나 위험 구역이 많아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산업이 1순위다. 고온과 유독 가스 위험이 있는 정유·화학, 철강, 시멘트 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반도체 산업 등에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의 서브팹은 배관과 장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가스 누출 위험이 상존해 로봇 수요가 매우 높다. 발전소나 변전소 같은 유틸리티 산업도 주요 타깃이다.”

    —사족보행 로봇 시장에는 보스턴다이내믹스 같은 경쟁자가 있는데, 애니멀만의 강점은

    “경쟁사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범용 플랫폼’이라면, 우리는 철저히 ‘산업용 점검’에 특화된 ‘엔드 투 엔드 솔루션(하드웨어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전 과정 통합 지원)’이다. 별도 장착 없이 열화상 카메라, 가스 감지기, 마이크를 모두 내장하고 있고, 방수·방진 최고 등급(IP67)을 갖춰 악천후에도 끄떡없다. 고객은 로봇 기계가 아니라 로봇이 수집하는 ‘데이터’와 ‘안전’을 구매하는 것이다.”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기업들과 비교하면 어떤가

    “중국 기업은 주로 하드웨어 가격에 집중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원하는 건 통합 솔루션이다. 우리는 로봇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설비 이상을 판단하고, 이를 고객사의 기존 관리 시스템과 즉시 연동하는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췄다. 데이터 보안과 시스템 통합 능력 면에서 지향점이 다르다.”

    —해외 로봇을 도입하는 한국 기업들은 고장 시 유지보수 문제를 우려한다

    “잘 알고 있다. 공장 가동 중단(Downtime)은 기업에 치명적이다. 경쟁사는 수리를 위해 본사로 제품을 보내야 해 오래 걸리지만, 우리는 한국 파트너사 등을 통해 현지 엔지니어가 즉시 출동한다. 문제의 80% 이상을 국내 엔지니어가 부품 교체 등으로 현장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애니멀이 현장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한 경우도 있나

    “시멘트 생산 시설에서 음향 이미지 센서를 장착한 로봇을 투입해 압축 공기 및 가스 누출 지점을 정확하게 잡아낸 경우가 있다. 좁은 생산 구역에서 2주가 채 안되는 시간 동안 6건의 누출을 찾아냈다. 이런 신속한 탐지 능력을 공장 전체로 확대해 1년간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지속적인 압축 공기 누출로 인한 낭비를 줄여 연 수십만달러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로봇 기능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나

    “내년에 방폭 인증을 받은 신모델 ‘애니멀 X’를 출시한다. 폭발 위험이 있는 구역에서도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어 정유·화학 플랜트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로봇을 통해 실질적인 운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만큼, 내년에는 한국 주요 기업들과 협력해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도입 사례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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