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26일 국회에 출석해 야당 대표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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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결혼 뒤 배우자 성씨를 따르는 ‘부부 동성제’의 문제점을 일부 해소하는 새 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원래 성을 결혼 뒤에도 바꾸지 않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 도입이 더 미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일본 정부 대변인을 겸하는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10월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연립정당 합의서’에 동일호적 동일성씨(부부 동성) 원칙을 유지하면서 사회 생활 전분야에서 (결혼 전) 옛 성을 ‘통칭’(통상적으로 쓰는 이름)으로 쓰는 제도를 만들기로 했다”며 “정부는 이 합의를 바탕으로 여당과 함께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부부가 한쪽 배우자 성을 따르는 ‘부부 동성제’로 인해 결혼 뒤 성이 바뀐 이들은 사회생활에서 여러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현재도 지방자치단체 행정명령 등을 통해 결혼 이전 ‘옛 성’을 제한적으로 쓸 수 있지만, 현실에선 일본 은행 약 30% 정도가 ‘옛 성’으로 계좌 개설이 불가능한 게 대표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지난 10월 취임 직후, 결혼 뒤 ‘옛 성'을 쓰지 못해 사회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법률 개정 검토를 지시했다. 앞서 그는 총리 취임 전인 올해 1월 일상에서 옛 성 사용을 막는 일이 없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정부가 부부 동성제를 유지하면서 일상 생활에서 ‘옛 성’ 사용을 법으로 보장하는 법안을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라며 “행정 절차나 금융 기관 등에서 ‘옛 성’을 쓰려는 사람들의 불편과 불이익을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부가 마련한 안에는 현재 주민표(주민등록증)에 ‘옛 성'을 기재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결혼 전 이름으로도 평소 사회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부부 동성제는 성별과 관계없이 결혼한 부부가 한쪽 성을 따라 호적을 하나로 정리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카이치 총리는 남편 야마모토 타쿠(호적 이름은 다카이치 다쿠) 전 중의원 의원과 두 차례 결혼(한 차례 이혼했다가 같은 남성과 재혼)했는데 첫번째는 남편 성을 쓰고, 두번째 결혼 때는 남편 성을 ‘다카이치’로 바꿨다. 하지만 여성이 배우자 성을 따르는 경우가 94%에 이를 만큼 압도적이어서 성차별이란 논란과 함께 주로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불편함에 대한 개선 요구 목소리가 컸다.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일본 정부에 여러 차례 ‘선택적 부부 별성제’ 도입을 권고해왔다.
‘옛 성’의 통상적 사용을 법제화하는 게 부부 별성제 도입 요구를 일부 무마하면서, ‘부부 동성제’ 존치를 강력히 주장하는 보수층 눈치를 본 결과라는 풀이도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입헌민주당은 이번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선택적 부부 별성제' 도입 요구가 무마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입헌민주당의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 실현 본부 사무국장인 구로이와 다카이로 의원은 이번 법안이 성립되면 (선택적 부부 별성제 도입은) 5년, 10년 늦어질 것이라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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