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는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인류 문명을 지탱해온 가장 강력한 표준이다. 건축물부터, 자동차, 가전제품, 항공기, 심지어 우주선까지, 모든 구조물과 기계는 나사 없이는 완성할 수 없다. 나사는 단순한 금속 조각을 넘어, 인류의 복잡한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한 ‘보이지 않는 질서’였다.
19세기 산업혁명 초기, 나사 규격은 제각각이었다. 나라마다, 공장마다, 심지어 같은 회사 내에서도 나사의 크기와 나사산의 각도가 달랐다. 같은 공장에서 만든 기계도 나사 규격이 다르니, 수리공은 매번 새 나사를 깎아야 했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 낭비는 불가피했다.
그러다 1841년 영국의 조셉 휘트워스(Joseph Whitworth)는 최초로 나사산의 각도와 간격을 규격화한 ‘휘트워스 나사’를 제안했다. 이후 미국과 독일, 일본 등 각국에서 자국 표준을 만들었다. 이후 국제표준화기구(ISO)가 통합 규격을 제정하면서 글로벌 호환성이 확보됐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나사 대부분은 ISO, ANSI, JIS 등 국제·국가 표준을 따른다. 이제 ‘M8×1.25’로 표기된 나사는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정확히 호환된다.
세상을 바꾼 표준 - 나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러한 표준은 제조 혁명으로 이어졌다. 자동차 산업에선 대량 생산 체계에서 부품 호환성을 보장했다. 건축업에선 철골 구조물의 안정적인 결합을 보장했다. 전자업종에선 미세 나사 규격을 통해 소형화와 정밀화를 실현했다. 항공·우주 산업에선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고강도 나사 규격을 확립했다. 약속을 지킨 나사는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고, 이는 제조 단가 인하로 이어졌다. 강도와 안전기준까지 표준에 포함돼 있어, 어느 나라의 제품이든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나사는 연결을 상징한다. 표준화된 나사는 국가와 기업, 산업과 산업을 연결하는 ‘언어’가 됐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만든 기계와 부품이 호환 가능한 것은 나사 규격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산업 발전으로 나사의 역할과 소재, 기능이 진화하고 있다. 센서를 내장해 체결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스마트 나사’를 비롯해, 초경량·내열 소재로 만든 항공우주용 나사, 나노 기술을 활용한 초정밀 나사 등이 등장하고 있다. 6G 시대의 통신 표준이 인간을 연결한다면, 미래의 나사 표준은 물질 세계를 더욱 정교하게 연결할 것이다.
윤희훈 기자(yhh22@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