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체제가 전지·친환경·바이오 등 신성장 영역을 키우며 외형을 확대하고 미래 사업의 판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높아진 재무 부담과 전기차 수요 둔화 등 복합 위기 속에서 김동춘 체제는 수익성과 효율 중심으로 재정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LG화학의 리더십 전환이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닌 중대한 전환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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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영입 첫 CEO…신사업으로 '대전환' 견인
3M에서 글로벌 사업·혁신 전략을 책임졌던 신학철 부회장은 LG화학 역사상 외부 영입 CEO로 당시 파격적인 인사였다.
구광모 회장의 체제 구축 초기 글로벌 감각을 갖춘 외부 인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LG그룹의 보수적인 인사 문화가 변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평가됐다.
신학철 부회장은 2019년부터 세 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7여 년간 회사를 이끌었고 전지 소재 친환경 소재 혁신 신약 등 '3대 신성장 동력'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2010년대 후반 20조원대 후반~30조원 안팎이던 LG화학의 연결 매출은 배터리 및 첨단소재 성장, 일시적 석유화학 호조를 타고 2021~2023년 40조원대를 훌쩍 넘어 섰다. 글로벌 전기차 캐즘(일시적수요둔화)과 석유화학 불황 여파로 최근 들어 영업이익 하락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약화됐으나 외형 측면에선 '덩치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의 분사는 신 부회장의 상징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 출범과 상장으로 LG화학은 전기차·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셀·팩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떼어내고 대신 소재·화학·바이오 중심의 '사이언스 기업'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대적인 구조 재편을 단행했다.
이를 기반으로 배터리 소재에 승부수를 던진 LG화학은 양극재, 분리막, 동박 등 핵심 소재 전 영역에서 증설과 JV(합작법인) 투자를 확대하며 2022년 약 4.7조원 수준이던 배터리 소재 매출을 2030년 30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내놨다. 미국·유럽 OEM을 겨냥한 북미 양극재 공장, 광물·정제 회사와의 장기 공급계약 등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됐다.
배터리 소재와 함께 신학철 체제가 그려온 또 다른 축은 친환경·바이오·첨단소재다. 2021년 친환경 플라스틱, 바이오 기반 원료, 탄소저감 솔루션 등에서 5년간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으로 "전통 석유화학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수치로 제시했다. 재활용·바이오 원료 비중 확대, 탄소중립 제품 포트폴리오 구축 등을 통해 2030년까지 신성장 사업에서 40조원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도 함께 제시됐다.
바이오·제약 부문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이뤄졌다. 일부 파이프라인을 정리하는 대신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 개발·라이선스 아웃을 강화해 안정적인 수수료·마일스톤 수익 기반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다만 이 분야는 아직 그룹 전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사진=LG화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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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확장…재무 부담은 불어나
외형 확대와 신사업 베팅으로 기업 자체의 몸집 키웠지만 재무 부담이란 짐이 남아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소재·친환경·첨단소재 투자와 CAPEX(설비 투자) 확대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순차입금 규모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50조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시점에 이르렀지만 고금리 환경과 전기차 캐즘 탓에 계획대로 현금 흐름이 따라오지 못하면서 순차입금은 수년 전 대비 약 두 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2024년 실적을 보면 매출은 48.9조원이었음에도 영업이익이 1조원에 못 미쳤고 석유화학 부문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 여파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신학철 체제가 포트폴리오 전환 속도가 빠른 만큼 재무 안전망 관리가 다소 뒤로 밀렸다는 비판도 받는다.
'소재통' 김동춘 선임…내부 기술·전략형 리더십 전환
LG화학의 반도체 패키징용 액상PID(오른쪽)와 필름PID(왼쪽). 사진=LG화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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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CEO 교체의 핵심은 '외부 글로벌'에서 '내부 기술·전략형' CEO 시대로의 전환으로 풀이된다.
회사는 김동춘 사장을 신임 CEO 선임하고 7명의 신규 임원을 승진시키며 고부가·미래 사업 중심의 인사 재편을 단행했다. 신학철 부회장이 펼쳐 놓은 지도에서 앞으로는 실질적인 수익과 기업가치로 연결될 길을 내는 역할을 김 사장에게 맡기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1968년생인 김동춘 사장은 1996년 입사 후 전자·반도체·첨단 등 스페셜티 영역을 두루 경험하며 공정·기술·고객 대응부터 사업 전략·신사업 개발까지 내부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정통 LG화학맨'으로 평가 받는다. LG와 LG화학에서 전략·신사업을 맡으며 그룹 전체의 방향성과 의사결정 구조 역시 깊이 접해 왔다.
특히 LG화학 내부 회계 전문가로 꼽히는 차동석 CFO와 의학·바이오 분야 전문가인 손지웅 생명과학사업본부장 2명의 사장이 있음에도 첨단소재 전문가 김동춘 사장을 부사장 1년 만에 초고속 승진시킨 것은 회사의 명확한 사업 향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첫 시험대는 석화 구조조정·CAPEX 부담
충남 서산시 LG화학 HVO 공장 건설현장. 사진=LG화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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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수장은 신학철 부회장과 다른 유형의 리더십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신 부회장이 '어떤 사업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사업의 외연을 넓혔다면 김 사장은 '어떤 사업을 어떻게 수익성 있게 운영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이 본격적으로 '확장' 국면에서 '운영' 국면으로 옮겨가는 전환점이 된다는 의미다.
첨단소재 고수익화, 북미·유럽 고객 포트폴리오 확대, CAPEX 효율성 제고, 중국발 가격 경쟁 대응, 석화 구조조정과의 통합적 전략 설계 등이 김 사장의 초기 과제가 될 전망이다.
가장 시급한 건 GS칼텍스와의 여수산단 NCC(나프타분해설비) 감축 방안 논의 타결이다. 정부가 연말까지 자율개편안을 내놓으라는 '데드라인'을 잡아 놓은 상황에서 김 사장은 내년 초 임기 시작부터 후속 조치를 넘겨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 단계서부터 동향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대산 NCC 통합 '1호 개편안'을 제출하면서 정부는 최대 집적지인 여수 산단을 향해 "대산이 사업재편의 포문을 열었다면 여수는 사업재편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인 바 있다.
재무 리스크 완화도 큰 과제다. 2020년 6조원이었던 CAPEX는 지난해 14조원을 넘어섰고 고금리 상황에서 이자까지 증가해 올해 3분기 기준 차입금은 33조원에 이르렀다. 이는 회사 신용도와 장기 성장 역량에도 직결되며 시장이 요구하는 기업가치 회복을 위해서도 더 많은 숫자·수익성·현금흐름 중심의 경영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올해 LG화학은 생명과학사업본부 에스테틱 사업을 2000억원에 브이아이지(VIG)파트너스에 매각했으며 수처리 필터사업을 사모펀드(PEF) 운용사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에 1조 4000억원에 처분하는 등 사업 다이어트를 진행해 왔다.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PC) 등과의 여수 NCC 2공장 분할 JV 설립 협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해 유동성을 확보하게 될지도 관건이다.
첨단소재사업부의 이익률 정상화 여부도 관심이 쏠린다. LG화학은 양극재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 왔으나 전기차 캐즘으로 올해 3분기 첨단소재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8380억원)으로 떨어졌다. '소재통'인 김동춘 사장의 주 종목인 만큼 그의 능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부분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LG화학은 "김동춘 사장은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 사업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미래 혁신을 주도할 적임자"라며 "이번 인사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경쟁 우위의 사업 구조 확립을 지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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