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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배려한답시고 돌려서 말하다 진심과 멀어진 날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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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에게 들은 불만, 멀어질까 두려워 B에게 돌려서 말하곤 했다

    마음을 읽으며 당황하고 가까워질 시간을 내가 빼앗고 있었구나

    조선일보

    /일러스트= 이철원


    “형, 저 선배한테 말 못 하겠어요. 형이 좀 전해줘요.” 연습실에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세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믿고 부탁해 줘서 고맙다는 마음, 왜 직접 말하지 않느냐는 답답함, 내가 잘 전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내가 잘 얘기해 볼게.”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는 그 선배를 찾아가서 후배의 말을 ‘살짝 바꿔서’ 전한다. “그 친구가 그러는데, 그 장면에서 조금만 더 호흡을 맞춰주면 좋겠대요. 형 연기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래요.” 원래 후배가 한 말은 이랬다. “저 사람 왜 맨날 혼자 연기해요?”

    나는 어릴 때부터 ‘돌려서 말하는 사람’이었다. 외동이었고,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친구들과 떠드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빛났다. 문제는 그 빛나는 시간을 잃어버릴까 봐 늘 불안했다는 것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쟤 진짜 나쁘지 않아? 맨날 나 무시하고, 너무 미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라고 말하면 이 친구와 멀어질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흉을 본 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00이가 나 욕했다며? 애들이 그러던데?” 나는 다급하게 말을 돌렸다. “아니야, 00이는 너 정말 좋아해. 근데 네가 가끔 자길 무시하는 것 같대. 그걸 몰라줘서 밉다고 했어.” 전부 사실이었다. 00이가 이 친구를 좋아하는 것만 빼고는. 그 친구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셋은 친해졌다. 아마도 이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돌려서 말하는 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A가 B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으면, 나는 B에게 가서 살짝 바꿔 전했다. “A가 요즘 좀 서운한가 봐.” 나는 양쪽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양쪽 모두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효과가 있었다. B가 A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두 사람이 다시 가까워진 것을 보면 뿌듯했다. 나는 그 뿌듯함에 취해서 계속 ‘돌려서 말하는 사람’으로 살아갔다.

    연극을 시작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은 나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다. 이들과 멀어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늘 한쪽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펼쳐지는 서로의 불만을, 최대한 돌려서 서로에게 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는 연기가 너무 좋아서 조금만 맞춰주면 된대”라고 전했더니, 상대방은 자신의 연기가 칭찬받은 줄 알고 더 자기 식대로 했다. 후배는 나를 원망했다. “형, 분명히 말했잖아요. 왜 안 전해준 거예요?”

    더 난감한 경우도 있었다. 양쪽의 말을 각각 돌려서 전하다가, 나중에 두 사람이 직접 대화하게 된 순간이었다. “오늘 만났더니 나한테는 다르게 말하던데?” 두 사람은 오히려 나를 의심했다. 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오해가 생길까 봐, 상처받을까 봐. 하지만 내 변명은 궁색했다. 멀어지기 싫어서 돌려서 말했는데,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었다. 며칠 전, 후배가 또 그 말을 했다. “형, 저 선배한테 직접 말 못 하겠어요. 형이 좀 전해줘요.”

    나는 이번에는 다르게 대답했다. “아니, 네가 직접 말해. 내가 옆에 있어줄게.” 후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예전의 나 같았다. 후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상대방에게 다가갔다.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날것 그대로의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상대방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내가 괜히 직접 말하라고 했나.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랬구나. 나는 몰랐어. 미안해.” 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꽤 긴 침묵이 있었다. 내가 돌려서 말했다면 절대 생기지 않았을 침묵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직접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돌려서’ 말할 때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며 어색해하고, 당황하고, 그래서 결국 가까워지는 그 시간을 빼앗고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돌려서 말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혼자 남겨지기 싫은 나의 불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멀어질까 봐 두려워서 말을 포장했는데, 그 포장 때문에 오히려 진심을 읽지 못한 것이다.

    요즘 나는 말을 잘 돌리지 않는다. 직접 말하라고 하고 옆에 있어준다. 동료들은 당황하고, 때로는 서운해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 대신 옆에 서서,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함께 견딘다. 물론 아직도 나는 완전히 바뀌지 못했다. 가끔은 여전히 말을 돌려서 전하고, 그때마다 양쪽에게 미안해지는 밤이 찾아온다. 멀어지기 싫어서 돌려서 말했는데, 결국 멀어졌던 수많은 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진짜로 가깝게 만드는 건, 돌리고 돌려서 포장된 말이 아니라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을 함께 견디는 시간이라는 것을. 돌려서 말하면, 그대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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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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