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조직을 지탱하는 건 사람…차기 CEO, 직원과 현장 존중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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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킹 사고로 네트워크 안정성은 KT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박 후보의 유·무선 본업 리더십도 시험대에 올랐다.
관건은 구조다. 네트워크 투자가 뒷전으로 밀린 배경에는 정치적 외풍에 취약한 지배구조가 있다. 이 구조를 끊어낼 수 있느냐가 박윤영호 KT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다.
◆ 차기 CEO, 이사회의 선택은 ‘안정’…최우선 과제는 ‘네트워크 보안’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박 후보는 조만간 서울 광화문에 별도 사무실을 마련하고, 주요 임원들로부터 경영 현황을 보고받는 등 준비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1962년생인 박 후보는 30년 넘게 KT에 몸담은 정통 ‘KT맨’으로 KT 조직문화와 의사결정 구조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이에 이번 인선은 해킹 사태 이후 흔들린 조직을 외부 변수 없이 조기에 수습하려는 선택으로 읽힌다. 지배구조 혼선과 내부 노조·이사회의 복잡한 역학을 즉시 관리할 수 있는 인물은 사실상 박 후보뿐이라는 판단이다.
앞서 서울·경기 지역 KT 고객을 중심으로 발생한 소액결제 다중 피해 사건은 초소형 기지국, 이른바 ‘펨토셀(Femtocell)’을 악용한 범행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관리가 허술한 펨토셀이 ‘가짜 기지국(Fake Base Station)’처럼 작동해 코어망에 접속했고 이 과정에서 고객 통신 트래픽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펨토셀은 전용 회선이 아닌 일반 브로드밴드(인터넷)를 통해 접속되는 구조라 원칙적으로 폐쇄돼야 할 기간망이 외부 인터넷과 연결될 수 있는 태생적 위험을 안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는 펨토셀 확대에 신중했던 반면 KT의 선택은 보안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주파수 재할당 과정에서 ‘실내 커버리지 확대’가 주요 조건으로 제시된 만큼 KT가 향후에도 펨토셀을 같은 방식으로 활용할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검토할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정권 따라 흔들린 KT 경영, 결국 보안 사고로…“네트워크 투자심의 단계부터 제약”
이번 사태는 단순히 특정 장비의 결함을 넘어 KT의 네트워크 보안 체계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가짜 기지국이 코어망에 접속하려면 IPsec(Internet Protocol Security) 인증키가 필요한데 KT는 이 해당 인증키 관리에 허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실내 커버리지를 확충하고자 펨토셀을 무분별하게 늘리는 전략과 맞물리며 사고 이후 수습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통신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방화벽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모든 단말과 장비를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항상 검증하는 ‘제로 트러스트’ 체계를 하드웨어 단계부터 구축하고, AI 기반 지능형 관제 시스템을 도입해 사람이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네트워크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며 “이번 사고 역시 침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관리되지 않은 비인가 장비가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었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업계는 박 후보가 네트워크 보안을 중장기 전략으로 설계하기 어려운 KT의 구조적 한계를 우선 극복하는 것이 선결조건이라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사고는 결국 ‘단기 성과 중심의 경영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게 KT 출신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치적 외풍에 취약한 지배구조 속에서 역대 CEO들이 연임을 장담하기 어려웠고 그 결과 중장기 투자보다 가시적 성과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네트워크 커버리지 확대에 펨토셀이 동원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KT 전 직원인 A씨는 “(민영화 이후) C레벨 성과급 지급 체계가 단기 실적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투자 역시 당장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으로 자연스럽게 쏠렸다”며 “통신사로서 반드시 감내해야 할 미래 투자는 체계적으로 외면되어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의 노획물로 인식돼 온 CEO 자리와 정치권 인사의 유입, 회사의 장기 경쟁력과 무관한 단기 수익 위주의 이른바 ‘먹튀형’ 사업 투자가 겹치면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구조화됐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KT 출신 B씨도 “십여 년 이상 지속된 비용 절감 기조가 반복되면서 투자 판단이 필요성과 시점보다 비용 통제에 맞춰 작동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며 “그 결과 노후 장비 교체나 시스템 개선과 같은 필수 투자조차 투자심의 단계에서 제약을 받게됐다”고 지적했다.
◆ 현업도 단기 성과 경영에 밀려…“인프라 관리 조직 경시 문화도 해결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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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경영 관성은 조직 내부 구조에도 투영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B씨는 현업과 스텝 조직 간 구조적 불균형을 지적하면서 “현장 조직의 문제의식과 요구가 본사 중심의 스텝 조직이나 관리 체계에 의해 반복적으로 경시돼 왔는데 이 같은 구조는 정부 조직과 공기업 시절부터 이어진 관성이 민영화 이후에도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결과”라고 짚었다.
실제 지난해 김영섭 KT 대표 체제에서 네트워크 운용 인력의 분사가 진행되자 내부 반발이 거셌고 일부 직원이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장에선 필수 인프라 조직마저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삼는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는 전언이다.
B씨는 “통신·IT 인프라는 최신 기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급격히 취약해지는 특성이 있다”며 “현업의 문제 제기가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는 현업–스텝 간 역행된 구조를 바로잡지 않는 한 유사한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사외이사 갈등이 키운 변수…CEO 선임 둘러싼 ‘정치적 해석’ 경계 목소리
한편 최근 KT 차기 CEO 선임 과정에서 사외이사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인선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적 이슈로 비화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후보에게는 조직 운영 정상화뿐 아니라, 정치적 쟁점으로 번질 수 있는 논란들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도 동시에 주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논란은 최근 조승은 KT 사외이사가 겸직을 이유로 해임되면서 촉발됐다. 조 전 이사는 2023년 6월 KT 사외이사로 선임된 뒤 2024년 3월 현대제철 사외이사를 겸직했다. 이후 국민연금의 KT 지분 매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이 KT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최대주주 계열사 이사를 겸직한 상태가 돼 법적 결격 사유에 해당하게 됐다.
업계에선 차기 CEO가 누구냐에 따라 사외이사들의 향후 거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이번 사안이 단순한 자격 문제를 넘어 내부 이해관계 충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 전 이사가 이번 CEO 선임 과정 중 3인 면접 단계부터 배제된 것도 이런 해석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일각에선 해당 문제가 CEO 선임이 본격화된 시점에 제기됐다는 점에서, 사외이사 자격 논란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자칫 인선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설령 정치권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조 전 이사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논란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해석이 더해질 수 있는 만큼, KT를 민간기업으로 인식하고 CEO 선임 문제를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지 않으려는 정치권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 차기 CEO에게 보다 근본적인 리더십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KT 전 직원 A씨는 “지배구조 개선이나 외풍 차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라며 “결국 조직을 지탱하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인 만큼, 직원과 현장을 얼마나 존중하는 경영자의 태도가 KT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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