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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2 (월)

    [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韓 1% vs 대만 7% … 이유있는 성장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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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한국과 대만은 20세기에 '고도성장'과 '괜찮은 분배'를 동시에 달성한 경제 기적의 쌍벽이었다. 대만은 전쟁을 겪지 않았고 국민당이 본토에서 다량의 금을 들고 갔기 때문에 한국보다 초기 조건이 좋았다. 그래서 성장률은 비슷했지만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이 계속 높았다. 그런데 21세기 초에 한국이 역전했다. 중국 경제가 급속히 커지면서 중화학산업이 강한 한국이 중간재 수출을 많이 할 수 있었고 대기업 성장세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대만 국민소득이 높아지는 재역전이 벌어졌다. 수치를 보면 깜짝 놀랄 수준이다.

    한국은 0.8%로 성장률 전망이 낮아졌다가 하반기에 조금 회복되면서 1%를 넘길 수 있다고 안도하는 분위기다. 반면 대만은 연초 4.5% 전망에서 7.3%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꼴찌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으로 고전하는 유럽연합(EU)조차 1.3% 성장한다. 미국은 2%를 넘길 것 같다. 한국과 대만의 격차가 왜 벌어지게 됐나?

    일부에서는 대만이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 인공지능(AI) 투자 붐에서 더 큰 혜택을 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 또한 그 혜택을 많이 보기 때문에 이렇게 큰 성장률 격차를 설명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정치 갈등이나 안보 위협은 대만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단일민족이 여야로 나뉘어 정쟁을 벌이는 정도지만, 대만은 소수 본토인과 다수 대만인 간의 해묵은 갈등 위에 친중 국민당과 반중 민진당 간의 격렬한 투쟁이 벌어진다. 중국이 침공을 위협하면서 안보 불안도 크게 높아졌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차이점은 정치 갈등 와중에 어느 대만 정부도 반(反)기업 정책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기업 투자를 적극 지원하는 정책에는 변함이 없었다. 호국신산(護國神山)으로 불리는 TSMC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에너지, 용지 지원이 이루어졌다. '워라밸'을 찾는 젊은 세대가 늘었지만, 일단 입사하면 기업의 필요에 맞춰 전력을 다할 수 있는 근로체제도 만들어져 있다. 24시간 연구인력을 돌리는 나이트호크(night hawk) 시스템은 반도체에서 선두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은 기업 투자를 억제하는 족쇄를 너무 많이 만들어 놓았다. 7년 전에 도입한 경직적 주 52시간 근무제는 기업 역량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근로 의욕을 크게 떨어뜨려 놓았다. 에너지, 용지, 용수 등 정부가 당연히 지원할 분야에서도 오히려 방해한다고 할 정도로 역주행하고 있다.

    미래를 보면 한국 상황은 더 암울하다. 대만은 국가 부채를 보수적으로 관리한다. 포퓰리즘적 돈 뿌리기가 어느 정도 있지만 빚을 늘려 한 적은 없다. 그래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가 25% 수준에서 머물러 왔다. 올해는 호황으로 세금이 많이 걷히자 부채를 대폭 갚았다. 지금 추세면 GDP 대비 부채비율이 2030년에 10% 밑으로 떨어진다. 반면 한국은 부채를 늘려 돈을 뿌리는 미래 세대 약탈적 포퓰리즘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그 결과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05년 25%에서 2015년 40%, 2021년 50%를 넘었고 2030년에는 64%에 달할 전망이다. 이 차이는 환율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대미 달러 원화가치는 2024년 초에 비해 11%가량 떨어져 환란(換亂) 수준에 육박한다. 대만 달러는 2%가량 절상됐다.

    곧 새해를 맞으면서 한국 경제를 대대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올해 주가 상승을 이끈 반도체와 방산은 과거 투자와 기술 축적이 반영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 정부에서는 미래를 향한 투자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야 사회에 희망이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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