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분간 현안 무관한 질문 쏟아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진행된 생방송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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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생방송으로 4시간 27분 동안 연례 기자회견을 갖고 80여 개 질문에 답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의 상당 부분이 치적을 자랑하거나 인간미를 부각하는 데 할애되면서 통치 도구로 악용됐다는 서방 언론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올해의 결과’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이날 회견은 현장에 내외신 취재진·참전 군인·일반 시민 등 수백 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인지 토크쇼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황당한 장면들도 적지 않았다. 한 러시아 기자는 최근 러시아를 지나간 혜성을 언급하며 “이것이 외계인이 조종하는 은하계 우주선일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푸틴은 “이는 비밀로 유지돼야 할 극비 정보다. 우리의 비밀 병기이며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할 것”이라고 농담조로 답했다. 한 참석자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느냐. 지금 사랑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푸틴은 “그렇다”고 답변했다.
‘국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질문에 푸틴은 모스크바 시내를 ‘암행 순찰’한다고 답했다. “정부와 여론조사 기관 자료를 정기적으로 보고받지만 민생 최전선에 있는 국민과 직접 이야기한다”며 “때때로 모스크바를 돌아다니며 상황을 직접 파악하고 국민의 정서를 느낀다”고 했다. ‘결혼하고 싶어요’라는 팻말을 들고 있던 남성 기자가 생중계 현장에서 여자 친구에게 청혼하자 청중들은 박수쳤다. 푸틴은 “남자가 가장이 돼야 한다. 축의금을 거둬야겠다”며 ‘덕담’했다. 이어 “자녀를 많이 갖는 것이 유행이 돼야 한다”며 한국의 출산율(0.7%)을 언급했다.
외국 기자만 현안과 관련한 비판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키어 시몬스 미국 NBC 기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종전 제안을 거부해 내년 전쟁으로 추가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책임을 지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푸틴은 “생명 손실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며 “우리가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스티브 로젠버그 영국 BBC 기자는 “새로운 특별 군사 작전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불러왔는데, 우크라이나를 넘어 다른 유럽 국가를 침공할 뜻이 있냐고 질문한 것이다. 푸틴은 “당신들(유럽)이 우리를 존중하고 속이지 않는다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 사회자가 끼어들어 “트럼프와 수십억 달러 규모 소송에 직면한 BBC는 어떻게 될까요?”라고 푸틴에게 묻자 푸틴은 “트럼프가 옳다”고 했다. 트럼프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방영 과정에서 짜깁기·왜곡 논란에 휘말려 트럼프에게 사과하고 경영진이 물러나고도 50억달러(약 7조4000억원)의 명예훼손 소송까지 당한 BBC를 조롱한 것이다.
푸틴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침공으로 무기 연기된 우크라이나 대선 문제까지 언급했다. 그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500만~1000만명의 우크라이나인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선거 기간 우크라이나 영토 공격을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우크라이나 선거의 시기나 형식은 푸틴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젤렌스키의 임기는 당초 지난해 5월까지였지만 전시 비상 상황에서는 계엄령을 발효하고 선거를 연기하도록 하는 자국법에 따라 통치해왔다. 프랑스 르몽드는 “치밀하게 기획된 회견이었다”며 “비판적인 러시아인은 한 명도 없고 서방 특파원도 소수만 참석한 가운데 푸틴은 장황한 말장난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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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원선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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