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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4 (수)

    [르포 대한민국] 20% 오른 최저임금, 달러로는 5% 줄어… 화폐 가치 하락이 부른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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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가치가 하락한다

    10년간 63.5%나 뛴 짜장면 값

    싼 물건 찾아다니는 ‘저렴한 삶’

    물가 억제 시도는 진통제일 뿐…

    일자리 창출과 실질 소득 상승을

    얼마 전 경기도 고양의 어느 중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짜장면을 주문했다. 뜨거운 면발을 후후 불어가며 먹다가 접시의 단무지와 양파에 눈이 갔다. 고작 두 조각씩이었다. 야박하다 싶다가 벽에 걸려 있는 ‘짜장면 6000원’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요즘 물가에 이 가격이면 반찬 투정은 사치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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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장면 값 10년간 63.5% 올라

    한국소비자원은 ‘참가격’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생필품과 서비스, 외식 가격을 조사해서 보여준다. 10년 전인 2015년 11월 서울의 짜장면 평균 가격은 4682원이었다. 지금은 7654원으로 63.5%나 상승했다. 점심 메뉴로 만만하던 칼국수, 김치찌개 백반, 비빔밥 모두 약 50% 올랐다.

    소비자들은 ‘가성비’로 도피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 시장이 급성장하고 초저가 상품의 대명사 ‘다이소’가 뷰티·패션까지 취급하는 ‘국민 백화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시적 소비의 시대가 가고 합리적 소비의 시대가 왔다고 반기기에는 뒷맛이 씁쓸하다. 가격에 밀려 삶의 질을 양보하는 게 생존 전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표상으로는 물가가 잡힌 듯 보인다.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1%로 물가 안정 목표인 2%에 근접했다. 하지만 체감하는 현실은 딴판이다. 재료비와 원자재 가격 급등은 자영업자와 소비자 모두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주택 임대료 및 각종 서비스 가격도 올라 생활비가 치솟으면서 여유로운 삶에서 점점 멀어진다.

    12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은 물가 안정이 민생 안정임을 강조하면서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을 지시했다. 정부는 관세를 인하하고, 각 부처에 차관급 물가 안정 책임관을 두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이 설탕·밀가루 등의 담합 여부를 살펴보는 등 행정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물가 안정 시도는 국민의 고통을 잠시 덜어주는 진통제 역할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와 행정이 ‘어떻게 더 싸게 공급할까’에만 몰두하면, 우리는 영원히 ‘싼 것만 찾아다녀야 하는 존재’가 된다. 저가 커피와 편의점 도시락이 당장의 지출을 방어해 줄 수는 있지만, 얇아진 내 지갑의 두께 자체를 해결해 주진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의 가치 하락이다

    물가 상승의 본질은 돈의 가치 하락에 있다. 2019년 8350원이던 시간당 최저임금은 2025년 1만30원으로 6년 사이에 20.1% 상승했다. 하지만 이것을 달러로 환산해 보면 7.16달러에서 6.79달러로 5.2% 하락했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원화로는 올랐지만, 달러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국제적인 구매력이 감소했다는 뜻이다.

    자산 시장은 더 잔인하다. 2019년 반포의 한강변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는 금 52.7㎏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23.5㎏이면 가능하다. 원화로는 27억 5000만원에서 48억5000만원으로 76.4% 폭등했지만, 가치가 유지된다고 보는 금을 기준으로 하면 55.4% 하락한 셈이다.

    소득이 화폐 가치 하락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회는 인간의 존엄을 위협한다. 구매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싼 물건만 찾아 헤매는 삶은 필연적으로 선택지를 좁힌다. 우리는 넓은 집을 살 능력을 잃은 채 좁은 방에 몸을 구겨 넣는 데 익숙해지고, 건강한 식단을 챙길 여력을 잃은 채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며 알뜰하다고 위로한다. 합리적 가격이라 불리는 상품들은 우리의 가난을 위장하는 그럴싸한 가림막 역할을 하는 셈이다.

    조선일보

    서울 시내 한 다이소 매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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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질 소득 높이는 게 궁극적 해법

    대중교통 등의 공공요금을 묶어두고 기업들을 압박해 물가지수를 관리하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당장의 가격 관리가 아니라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질 소득을 높여 시민 개개인이 당당하게 제값을 치르고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복원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하지만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 국민이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얼마나 싼 것을 줄 것인가” 따위가 아니라, “어떻게 내 소득을, 내 지불 능력을 높여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저렴한 삶’을 바라는 게 아니다. 실질 소득이 올라 ‘당당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삶’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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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값 변동 소비자 물가에 반영 안 해... 체감 물가와 괴리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와 일반 가계가 느끼는 체감물가 사이에 온도 차가 지속되고 있다. 이 괴리의 핵심 원인은 물가지수에 주택 가격 변동이 반영되지 않고, 정부가 통제하는 관리물가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시 전세(가중치 54.2)와 월세(가중치 44.9) 변동분만 넣을 뿐, 실제 주택 매매 가격의 등락은 반영하지 않는다. 주택 구입 비용은 소비가 아닌 자산 투자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등 주요국은 자기 소유 집에 거주하더라도 임대료를 지불한다고 가정하는 ‘자가 주거비’ 개념을 도입해 이를 물가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물가 산정 시 자가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26%에 달해 주택 시장의 변동이 물가 지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에 자가 주거비를 반영할 경우 지표물가와 체감물가 사이의 괴리가 상당 부분 설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주택 매매 및 임대차 거래 시 실거래가로 신고하는 제도가 정착돼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주택가격 변동을 파악해 물가지수에 반영할 수 있다. 한국은행, 국회입법조사처 등이 여러 차례 지적했고 국가데이터처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2023년 관련 연구 용역을 수행했다.

    또 다른 원인은 정부가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관리물가’의 영향이다. 관리물가란 전기·수도·가스 요금 등 공공요금과 의료비, 교육비 등 행정 지도를 받는 품목을 말한다. 한국 소비자물가에서 관리물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기준 21.2%로,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공공요금을 동결하거나 무상교육·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복지 정책을 확대하면, 관리 물가는 하락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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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시장 선거, 결국 물가가 좌우했다

    조선일보

    조란 맘다니(34) 미국 뉴욕시장 당선인 /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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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가 상승은 언제나 주요 정치 이슈였지만 최근 미국 민주당이 생활비 부담 완화(affordability)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미국 정치권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자칭 민주사회주의자인 34세의 이슬람 신자 조란 맘다니가 생활비 부담 완화를 내걸고 뉴욕시장에 당선된 것은 그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최근 뉴욕 시민들은 주택 임대료를 비롯해 급등하는 물가에 시달려 왔다. 뉴욕의 주택 임대료는 중위 가격 기준으로 월 3600달러(약 533만원)에 달한다. 연 소득 7만달러(약 1억원) 이하의 가구들은 전체 지출의 54%를 임대료에 쏟아붓는 실정이다. 자녀가 있을 경우 부담해야 하는 어린이집 비용은 2019년 대비 43%나 상승해 연간 2만6000달러(약 3850만원)에 이른다.

    맘다니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 당국이 통제할 수 있는 아파트 100만 채에 대해서는 임대료 동결을 약속했다. 각종 규제를 폐지하고 공공 자금을 투자해 향후 10년 동안 임대주택 20만 채 신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기에 더해 5세 미만 아동에 대해 무상 보육을 실시하고 시내버스 요금을 무료로 하는 등 뉴욕을 ‘부담 가능한(affordable)’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맘다니는 과반이 훨씬 넘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 역시 주택 가격 안정화 계획을 새해 초에 발표할 계획이다. 이렇듯 물가 상승과 생활비 부담 완화는 미국 정치권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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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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