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판 독립 훼손” 일부 유죄
양승태 측 “대법원서 무죄 확신”
2심 선고 후 법원 나서는 양승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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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30일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1심에선 세 사람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일부 혐의에 대한 판단이 뒤집혔다. 전직 대법원장이 형사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서울고법 형사14부(재판장 박혜선)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직권을 남용해 ‘한정 위헌 취지의 위헌 제청 결정 사건’과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 소송 항소심 사건’의 재판에 개입해 재판장의 정당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며 1심 무죄를 뒤집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지난 2019년 2월 검찰이 재판에 넘긴 지 7년 만이다.
재판부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에게 검찰이 적용한 혐의 47개 중 재판 개입 관련 2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차원에서 이뤄진 재판 관여 사실을 보고받았고, 박 전 대법관은 관련 회의에 참석하는 등 범행에 공모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재판의 독립은 양보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라며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재판의 독립이 훼손되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초래되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공소사실 대부분은 무죄”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항소심 판단과 관련해 “직권남용죄에 대한 확립된 법리에 반하는 판단으로 대법원에서 당연히 무죄로 결론이 바뀔 것이라 확신한다”며 “즉각 상고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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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45건 무죄, 2건 유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이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힌 건 항소심 재판부가 핵심 혐의인 ‘직권남용’의 범위를 1심 판단보다 넓혀 해석했기 때문이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4부는 30일 “사법 행정권자의 행위가 외형적으로는 법관에게 행정 사무에 관한 협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여도, 실질은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경우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1심이 “대법원장도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고, 직권남용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과 다르다.
이날 항소심 판단은 그간 다른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에서 나온 대법원 판결과도 배치된다. 앞서 대법원은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사건에서 “재판 관여는 일반적 직무 권한 내 행위가 아니라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날 “임 전 수석부장판사 사건은 대법원의 일반적이고 확립된 판례로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이 상고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 부분은 대법원 심리 과정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재판 관여 보고받고 묵시적 승인”
항소심 재판부는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이 한정 위헌 취지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결정한 사건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박 전 대법관이 해당 결정을 취소하는 데 개입했다고 봤다. 남부지법은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 일부 조항이 해석에 따라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 판단을 요구하는 위헌 제청을 결정했는데,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담당 재판장에게 연락해 이를 취소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특정한 법 해석은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이 법원의 법률 해석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이규진 전 위원이 담당 재판장에게 (제청 결정 취소를) 요청하기 전에 양 전 대법원장에게 사전 보고를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범행의 공모가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양 전 대법원장 등이 2014년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으로 국회의원직을 잃게 된 옛 통진당 의원들이 “의원 지위를 확인해 달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했다. 당시 이 사건 1심은 “헌재 결정을 법원이 다시 판단할 수 없다”며 각하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항소심 재판장을 만나 “통진당 의원들의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은 사법부에 있다”는 취지의 행정처 자료를 전달했다. 이후 선고된 항소심 판결문에는 이 자료와 동일한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당시 보고받은 문건에는 ‘해당 항소심 재판부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설명 자료를 전달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며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재판 관여) 행위를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했다. 박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공모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직권남용 등으로 기소된 이규진 전 위원과 이민걸 전 실장은 2022년 2심에서 옛 통진당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았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 사건과 함께 검토해 최종적으로 통일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등 45개 혐의 무죄
재판부는 ‘판사 블랙리스트’ ‘법관 비위 은폐’ 등 양 전 대법원장의 나머지 45개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진보 성향 법관들이 모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범행에 공모·가담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밖에 현직 판사들의 비공개 온라인 카페를 와해시키려 했다는 혐의,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 배상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징계하려고 했다는 혐의 등도 무죄가 됐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소송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인터넷 댓글 조작 사건, 전교조 법외(法外) 노조 사건 재판에 관여했다는 혐의 등에 대해서도 “공소사실 증명이 부족하다” “증거가 없다” “부적절한 행위여도 위법하진 않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직권남용 범위를 넓혀 적용해도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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