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한 팔레스타인인이 케피예(아랍 전통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 군인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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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승인했다.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핵심 영토가 될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서안지구 합병 전략을 노골화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가자지구 평화구상을 주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합병 반대 의사를 거듭 강조했다.
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은 이스라엘 안보내각이 전날 비공개 회의를 열고 유대인 정착민들의 서안지구 토지 매입을 용이하게 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통제권을 갖고 있는 지역에 대한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조치를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팔레스타인 주민에게만 토지를 매각하도록 제한해 온 법률을 폐지하고, 그동안 기밀로 분류했던 서안지구 토지 등기부 정보를 공개해 토지 구매를 원하는 이스라엘인이 부동산 소유주에게 접근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또 토지 매매를 완료하기 전 ‘거래 허가증’을 받아야 했던 제도도 폐지됐다. 이 제도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토지 매각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위조·사기를 통해 토지를 매입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아울러 PA 권한을 약화시키는 내용도 포함됐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PA는 서안지구 40%에 달하는 지역의 행정 통제권을 갖고 있는데, 이번 조치를 통해 PA 관할 구역에서도 이스라엘 집행 기관이 수질 관련 범죄, 유적지 훼손, 환경 오염 등을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이번 조치를 주도한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과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은 “수십년 묵은 장벽을 제거하고 정착촌 개발을 가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안지구 정착민 출신으로 정착촌 확대를 추진해 온 극우 성향 스모트리히 장관은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발상 자체를 묻어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월13일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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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합병에 반대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서안지구 합병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안정적인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유지하고, 이 지역의 평화를 달성하려는 미 행정부의 목표와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는 11일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이란 핵 협상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휴전을 이끌어낸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구상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언급하며 장기적으로 ‘두 국가 해법’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스라엘 군사정보국 출신 마이클 밀슈타인은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개 대립을 피하기 위해 “합병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합병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PA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서안지구 병합 시도를 심화하는 위험한 결정”이라며 “팔레스타인의 존재와 민족적, 역사적 권리를 겨냥한 긴장 고조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체결된 모든 합의는 물론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미 행정부가 즉각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이집트·튀르키예·요르단·인도네시아·파키스탄 등 아랍·이슬람 8개 국가는 공동 성명을 내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이스라엘의 팽창주의적 정책과 행동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며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권리를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해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스라엘의 이번 조치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아브라함 아비노’가 팔레스타인 주택들과 묘지에 둘러싸여 있다. 이스라엘 안보 내각은 전날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통제를 강화하는 일련의 조치를 승인했으며, 이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 추가 정착촌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전망이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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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강 서안지구는 1967년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점령했으며, 국제사회는 이를 불법 점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서안지구 정착촌을 공격적으로 확대해왔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추적해 온 단체 피스나우는 지난 3년간 이스라엘이 68개의 정착촌과 4만채 이상의 주택 건설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PA를 약화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안보에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텔아비브 소재 국가안보연구소의 아비샤에 벤 사손고르디스 선임 연구원은 “PA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의 일상 생활과 법·질서, 테러리즘 사이에 완충 지대 역할을 해왔다”며 “PA가 약화되면 이스라엘에게 이롭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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