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저가 공세 맞서 EU도 ‘무역장벽’
1억 유로 넘는 투자땐 승인 거쳐야… 외국인 의결권도 49%까지 제한
한국 車 타격 불가피… 방산도 촉각
무협, EU에 “차별우려” 서한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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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유럽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가속화법(IAA·Industrial Accelerator Act)’을 4일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관련 산업계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IAA 초안에 외국 기업들이 특정 제품을 유럽 역내에 팔 때 반드시 현지 생산 부품을 쓰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같이 사실상 ‘산업 보호막’을 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한국무역협회는 “한국 기업에 차별적인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서한을 EU에 전달했고, 자동차와 방산업계도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전기차·방산 유럽 수출 타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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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원회가 4일 공개하는 IAA에는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즉 역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우선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중국산 저가 수입품에 맞서 유럽 내 관련 산업계와 첨단 기술 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2일 본보가 입수한 IAA 초안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집약 산업, 탄소 중립 기술, 전기차 등을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해당 분야에서 보조금 혜택을 받거나 정부 조달(구매)에 참여하려면 일정 비율 이상 유럽산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예컨대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배터리를 제외한 부품의 70% 이상을 유럽산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식이다. IAA는 이 밖에도 유럽 내에서 외국인이나 기업이 1억 유로(약 1686억 원) 이상 신흥 전략 산업에 투자하려 할 경우에도 EU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외국인 의결권도 49%까지로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필요할 경우 현지 기업과의 합작 투자나 기술 이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담겼다.
무역협회는 초안대로 IAA가 발효되면 우리 자동차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유럽 자동차 시장은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매년 합계 110만 대가량을 판매하는 세계 3대 수출 시장이다. 체코 등에 생산 거점도 두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전기차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려면 부품 공급망 재편과 생산 계획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는 보조금과 공공지원의 영향이 큰 만큼 유럽 현지 생산이 아닌 차량은 EU 시장 진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방위 산업이 ‘전략 산업’에 포함될지도 변수다. IAA 초안에는 방산을 전략 산업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전략 산업의 하류 가치사슬을 떠받치는 핵심 촉진자’로 표현해 최종안에 방산이 포함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기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IAA에 방산이 포함되면 유럽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한국 방산 기업에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IAA 통과 시 향후 유럽에 방산 제품을 수출할 때는 현지 생산 확대뿐 아니라 합작회사 설립, 기술 이전 요구 등이 뒤따를 공산이 크다. 업계에서는 당장 IAA에 방산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올해 3분기(7∼9월) 개정 예정인 EU 방위조달지침에 ‘메이드 인 유럽’ 우선 원칙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 계약은 정부 간 협상 성격이 강하지만, 유럽의 국방 지출이 결국 유럽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며 “특히 방산 강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EU 방산 생태계 부활을 적극 추진 중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 “명백한 유럽 산업 보호법”
EU가 이처럼 강도 높은 IAA를 마련한 이유는 중국의 저가 전기차 공세에 고전하는 ‘유럽 기업 지키기’로 풀이된다. 유럽자동차부품공급협회(CLEPA)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 부품 산업에서만 2030년까지 총 35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CLEPA는 “2024년과 2025년에 발표된 일자리 감축 계획만 총 10만4000명 규모”라고 설명했다. 독일 10대 제조업체 중 하나로 꼽히는 변속기 및 부품 제조업체 ZF가 7000개 일자리를 감축할 예정이고, 보쉬도 모빌리티 사업부에서 1만3000개, 타이어 업체 콘티넨탈도 1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럽 내 기업들이 자국 산업 보호 조치를 강력하게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유럽 자동차경영센터 슈테판 브라첼 소장은 오토모티브뉴스에 “새로운 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상대와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유럽 공급망 보호를 위해 명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유럽 수출이나 투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되자 정부와 경제단체 등은 일제히 대응에 나선 상태다. 여종욱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장은 “FTA 체결국이나 EU 공급망 경쟁력에 기여하는 국가에는 규정 적용을 완화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받아 차별을 받지 않도록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배터리 업계 일각에서는 IAA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산 저가 수입품을 겨냥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가 중국 기업들보다 유리해질 수 있다는 기대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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