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걸프지역 모든 미군기지 폐쇄’ ‘배상금’ 등 무리한 요구
가디언 “전황 반영 못한 구문”…협상 타결 가능성 ‘희박’ 분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재국 파키스탄을 통해 15개항으로 구성된 종전 협상안을 이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내용이 지난해 미·이란 핵 협상 과정에서 이란이 거부했던 것들과 거의 같아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와 CNN은 24일(현지시간) 미국이 파키스탄을 통해 15개항의 협상안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방송 채널12에 따르면 미국 측의 요구 목록에는 이란의 핵 능력 해체, 이란 영토 내 우라늄 농축 금지, 나탄즈·이스파한·포르도 핵시설 폐쇄, 헤즈볼라·하마스·후티 등 대리 세력 지원 중단, 미사일 수량과 사거리 제한 및 자위 목적에 한정한 운용,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이 포함됐다.
미국은 이란이 이 요구를 수용한다면 제재를 전면 해제하고, 부셰르 원자력발전소의 전력 생산을 포함한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란이 합의를 위반하면 제재가 자동 복원되는 ‘스냅백’ 조항을 종전 협정에 넣지 않는 것도 미국이 이란에 제공할 보상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협상안이 ‘재탕’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디언은 미국의 15개 요구 사항이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기 전까지 미·이란 간에 진행된 핵 협상의 기초가 됐던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항목 중 일부는 올해 들어 개전 전까지 세 차례 진행된 미·이란의 핵 협상 내용, 전쟁으로 이란의 주요 핵시설이 파괴된 상황 등을 반영하지 못한 구문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이란이 1년 전에 받아들이지 않은 내용을 거의 재탕했다”며 “회담에 대한 미국의 진지함이 부족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보다 더 큰 진전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꼬집었다.
이란이 미국 측 요구를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카탐 알안비야의 에브라임 졸파가리 대변인은 미국이 이란에 15개 요구 목록을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내부 갈등이 극에 달해 자기 자신과 협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란에 대한 적의가 당신들의 더러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유가는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과 협상을 통해 15가지 사안에 합의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및 여야 간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페이크(가짜)”라고 말했다고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했다.
이란도 미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종전 조건을 내걸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미국 측에 걸프 지역의 모든 미군기지 폐쇄,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금 지급,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통행료 징수, 전쟁이 재개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 이스라엘의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공격 중단, 이란에 대한 모든 제재 해제, 미사일 프로그램 제한에 대한 협상 불가 등을 안건으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내부에서는 협상 도중 두 차례나 이란을 공격한 미국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과 함께, 협상이 이란 고위 인사 암살을 위한 ‘함정’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WSJ는 이란 당국자들이 미국과의 대면 협상이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에 대한 암살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외신들은 트럼프 정부가 갈리바프 의장을 이란의 차기 지도자 및 종전 협상 상대로 낙점했다고 보도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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