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집에서 생활하던 복장 그대로 쓰러진 것 같았다. 외상도 없었다. 일순간 쓰러지는 뇌출혈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다만 의식을 잃은 지 오래된 듯했다. 바닥에 닿은 곳은 체중에 눌려 살이 뭉개져 있었다. 얼굴에도 팔다리에도 눌린 곳이 있었다.적어도 사흘은 지난 듯했다. 또 왼쪽 다리는 휘어진 상태로 굳어 있었다. 골절을 치료받지 않았을 때 생기는 불유합이었다.
우리는 그의 옷가지와 오물을 정리했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악취가 날 수밖에 없다. 노폐물이 인체 바깥으로 나오면 세균이 번식하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쓰러지는 순간 아무도 없다면 그 냄새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따라온 이웃이나 주변 지인조차 없었다. 그의 육체 외에는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없었다.
그를 CT실로 보냈다. 정해진 수순처럼 그에게서 커다란 뇌출혈이 발견되었다. 가망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경찰이 보호자를 찾았다고 했다. 멀리 사는 아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폐나 다른 장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엎어진 상태로 호흡을 잘 유지했던 것 같았다. 나는 왜인지 일말의 희망이 있을 것 같다고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본인의 의지를 말할 수 없다. 이럴 때는 보호자에게 모든 결정권이 주어진다. 잠시 뒤 그의 아들이 도착했다.
“전화로 설명드렸지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뇌출혈입니다. 아직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수술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확률이 높지 않고 어느 정도 회복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쓰러진채로도 며칠이나 살아계셨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침착했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한 답변처럼 내게 말했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한 잔이라도 더 마시는 게 인생의 전부인 사람 같았어요. 가족과 연을 끊고 일도 하지 않고 혼자 술만 드셨어요.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술만 드실 정도였어요. 사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도 오래전입니다. 아마 회복되면 또 술을 드실 겁니다.”
우리는 화면의 커다란 뇌출혈을 보고 있었다. 저 출혈은 며칠이나 뇌를 누르고 있었다. 저 뇌 안에는 그의 기억과 모든 욕망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술을 다시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연명 치료 같은 이야기는 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실 어떤 말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수술비야 어떻게든 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복하신다고 해도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일까요?”
아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답하곤 요양치료만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 소견서를 썼다. 어차피 억지로 수술을 받게 할 방법은 없었다. 이 서류는 심적인 동의이자 묵인이었다. 인생의 목표에는 부와 명예 같은 세속적인 것도, 가족이나 사랑 같은 개인적인 것도 있다. 아니면 건강하고 건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을 모두 포기하고 나면 남은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중 오로지 술이 주는 위안감에만 빠져버리는 삶이 있다. 그것조차 한 인간이 발견한 삶의 의미일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어차피 이런 순간이 올 것임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일순간 삶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을.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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