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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영국 브렉시트 부결-현지르포]시민들 환호하지만 속내 ‘제각각’···잔류파 “제2국민투표 실시” 찬성파 “노딜도 문제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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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5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앞에서 브렉시트 찬반 진영 시민들이 뒤섞여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런던|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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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안이 부결된 15일(현지시간) 저녁. 이 순간 만큼은 유럽연합(EU)의 심장은 EU 본부가 위치한 벨기에 브뤼셀이 아닌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앞이었다.

의사당 맞은 편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뜰에는 아침부터 짙푸른 EU의 깃발이 빼곡히 늘어섰다. 애빙턴 스트리트 가든, 팔리아멘트 광장 등 의사당이 내다보이는 공간들은 이 푸른 깃발로 무장한 시민들로 하루종일 발디딜 틈이 없었다. 야간 도심 집회에 등장한 대형 전광판에 메이 총리의 패배가 생중계되자 광장에 운집한 군중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12개의 별로 수놓인 푸른 깃발의 물결이 도심 밤하늘을 뒤덮었다.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시민들도 영국 국기, 유니언 잭을 흔들며 “위대한 영국의 위대한 독립”에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이내 “자랑스러운 유럽 시민(Eurpean citizon)”을 외치는 반 브렉시트 진영의 목소리에 묻혔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찬반 여론은 여전히 팽팽하지만, 브렉시트 반대 진영의 절박함이 만들어 낸 불균형이었다.

부인과 함께 저녁까지 의사당 앞을 지킨 크리스토퍼 베인(67)은 “불법적인 선동의 결과물인 브렉시트가 마침내 심판을 받았다”며 “이제는 국민들이 다시 영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은퇴한 교사라는 그는 “총리는 외국인혐오증을 이용해 이뤄진 2년 반 전의 국민투표를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제는 모두 진실을 알고 있다”면서 “브렉시트는 영국을 더 가난하고 약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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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브렉시트 반대 진영의 홍보 차량이 팔리아멘트 스트리트를 지나고 있다. 런던|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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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EUROPEAN UNION)’이라는 글자가 가장 위에 찍한 영국 여권을 펼쳐 든 패트리시아 힉스(26)도 표결 결과가 나온 직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런던에서 나고 자란 힉스는 “나와 친구들은 영국인이지만 동시에 유럽 시민”이라며 “실직과 국경장벽 외에 기대할 것이 없는 브렉시트는 이제 부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투표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이런 형편없는 브렉시트를 2년이나 끌고 온 정치인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서 “반드시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 진짜 힘든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표결 결과에도 불구하고 메이 총리가 재신임을 통해 EU와 브렉시트 협상을 재개하거나, 총선을 통해 노동당이 집권하더라도 브렉시트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반 브렉시트 진영에 팽배하다. 베인은 “영국 국민 다수와 노동당원 대부분이 국민투표를 지지하고 있지만 노동당 당수인 코빈은 아직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노동당을 찍어왔지만 총선이 이뤄진다면 노동당이 아니라도 국민투표를 공약하는 당에 표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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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 팔리아멘트 광장에 모인 반 브렉시트 진영 시민들이 의회의 브렉시트 표결 부결 결과를 들으며 환호하고 있다. 런던|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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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브렉시트 찬성 진영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당장 이번 브렉시트안 부결이 “영국 민주주의의 종말”이라며 의회를 비난하고 나섰다.

아일랜드 국기와 유니온 잭을 양손에 쥐고 의사당 앞에 나선 코윈 모리슨(65)은 “2016년 브렉시트 투표는 훌륭한 독립선언이었지만 정치인들이 모든 것을 망쳤다”면서 “메이가 물러나고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 보수당의 지휘권을 잡고 브렉시트를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투표는 이미 이뤄졌고 우리가 승리했다”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유럽 연합을 떠난다는 사실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했다.

의회에서 총리의 안이 비토되는 상황이 예견됐던만큼 이날 브렉시트 지지 시민 일부는 “노 딜 브렉시트도 문제없다(No deal. No Problem)”는 메시지를 선전하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모리슨은 “시간을 끌어봤자 혼란의 시간만 늘어날 뿐”이라면서 “협상의 진척이 없으면 노 딜 브렉시트를 인정하고, WTO의 다자간무역협정으로 직행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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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앞에서 한 시민이 국민투표를 실시하라는 시민들을 가로막으며 즉시 유럽연합을 떠나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런던|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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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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