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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정말 그런 거라면 세상이 너무 치사하게 느껴질 것 같다.
그런데 하필 '인성은 꽝인데 성공한 사람'이 눈에 잘 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제45대·2017년~현재, 공화당)도 그중 한 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쳤는데 지난 18일(현지시간) `올랜도 2020 대선 출정식` 이후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 )`을 들고 나왔다. 2016년과 내년 대선 모두 그의 핵심 공약은 `반(反)이민`이다. /출처=AFP·비즈니스 인사이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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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부터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불법체류자 수백만 명 제거(removing) 과정에 들어간다. 그들이 미국에 들어온 속도만큼 빠르게 없어질 것이다."(2019년 6월 18일,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불법체류자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떻게 사람을 향해 '제거한다, 없앤다'는 식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 대통령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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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말을 쓴 이유는 바로 다음날인 18일에 '올랜도 대선 출정식'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불법체류자란 주로 '캐러밴(미국 망명을 원하는 중미 3국 이주민 행렬)'인데 캐러밴이 미국에 오지 못하도록 국경에서 막는 것이 2016년 대선 때에 이어 2020년 재선 핵심 공약이다.
그리고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무슬림(이슬람교도) 혐오자'를 이주민 담당 국토안보부(DHS) 산하 세관국경보호청(CBP)의 대변인으로 지명할 것이라는 CNN 보도가 나왔다. CBP는 현장에서 미국 국경을 감시하면서 불법 이민을 차단하는 최전방 기관이다. 지명이 유력하다는 캐서린 고카는 남편과 함께 부부가 인종차별주의자다. 남편인 서배스천 고카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DHS 산하 반(反)테러·테러예방국에서 일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해에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도록 참모 역할을 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고카 부부는 트럼프의 이민·안보 정책을 이끄는 권력 커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캐서린 고카는 극우 온라인 매체 '브라이트바트' 같은 곳에 "서구 국가들이 인종차별주의라는 이유로 '이슬람병'을 외면한 결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이라크와 시리아, 이란으로 번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식의 인종차별·이슬람 혐오주의를 자극하는 글을 여러 번 기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건 올랜도 디즈니월드 청소부나 샌프란시스코 식당 웨이터를 하는 중남미 이민자들이 아니라 기술·전문직이다. 나라 입장에서는 기술·전문직을 받아들여야 좋기는 하지만 그는 미국 이주민 제도를 뜯어고친다면서 '인종 비하' 발언을 퍼붓는 중이다.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민주·공화당 연방 의원들 이주민 '임시보호지위(TPS)' 정책을 말하던 중에 "미국이 왜 거지 소굴(shithole) 같은 나라 사람들을 받아줘야 하느냐"고 버럭 성을 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했다. TPS는 미국 이주 제도에서 중요한 축이다.
미국 시민권 신청을 위한 면접/출처=넷플릭스 (Out of Many,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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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정책을 간단히 보자면 미국 이주 정책은 크게 양대 축을 이루는 두 가지 법에 근거한다. 1952년 제정된 이민국적법(INA)이 있고, 1980년 제정된 난민법이 있다.
"미국 사회와 역사 , 예술 등 100여개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미국 시민권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이주민들/출처=넷플릭스 (Out of Many,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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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달라진 게 많지만 이민에는 쿼터가 있고 그 쿼터에 따라 일부는 '누구를 시민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복권처럼 추첨하는 추첨제 방식(USA Green Card Lottery : Diversity Visa Program)으로 정한다. 미국 사회 '다양성'을 위한다는 취지로 1990년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제41대·1989~1993년, 아버지 부시, 공화당)이 서명했다.
베네수엘라 농업부 장관을 지냈던 Fanny Bello씨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폭정을 피해 미국 으로 왔다 ./출처=넷플릭스 (Out of Many,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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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S 적용을 받는 나라들은 수단이나 엘살바도르(2001년 대지진), 온두라스(1998년 허리케인), 니카라과(1998년 허리케인), 아이티(2010년 대지진), 예멘(내전) 같은 곳이다. 이 중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중미 3국(온두라스·과테말라·엘살바도르)에 속한다. 캐러밴이 미국 망명 신청을 위해 접경지로 몰리는 배경이다.
지난 해 10월, 수천 명의 캐러밴이 미국으로 가기위해 과테말라를 거쳐 멕시코로 향하는 풍경. 중미3국의 정치 경제 혼란 속에 캐러밴은 지금도 나라를 도망쳐 미국을 향한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정부가 말쳐내는 캐러밴들이 스페인으로 향한다고 보도했다.스페인은 가족 단위 이민이 미국보다 덜 까다로운 데다, 언어(스페인어)가 같기 때문이다. /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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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TPS 기간을 갱신해주지 않고 2020년까지만 유지하다가 끝낼 것이라고 했는데 같은 해 10월 연방법원이 '예비 중지' 결정을 내렸다. 법원 결정 덕에 46만여 명이 당장의 불안을 내려놨지만 2020년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조용히 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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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는 아버지 부시 정부가 도입한 추첨제를 아끼는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짜낸 '능력주의(merit system)'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올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 '쿠슈너 표 이민개혁안'은 영주권 발급 쿼터(110만개)는 유지하지만 영주권을 줄지 평가할 때 미국 내 학사·석사 졸업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영주권 발급을 점수제로 하는데 이민 신청자 미국 가족 관계 같은 것을 묻는 게 아니라 본인 학력이나 경력, 전문 기술력, 영어 능력 같은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겨 가족 이민을 10만명 이상 줄이고 기술·전문직 취업이민은 2배 늘리겠다는 목표다. 미국 내 가족이민은 전체의 65%이고 취업이민은 13% 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일은 얄미운 구석도 있다. "2018년에 정식 신분을 허가받아 재정착한 난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캐나다였다"고 19일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했다. 작년 한 해 캐나다가 수용한 난민은 2만8100명인데 이는 1980년 캐나다 난민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넘어섰다. 2018년 미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은 사람은 2만2900명으로 버락 오바마 정부(제44대·2009~2017년, 민주당) 정부 시절인 2016년(9만7000명)보다 대폭 줄었다.
트럼프 정부는 자국 난민 수용 인원을 줄이면서 이웃 나라들에게 이른바 '안전한 제3국(safe third country)'을 밀어넣고 있다. 이달 초 미국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관세 부과'를 들어 멕시코와 불법체류 이주민 정책 협상을 벌였는데, 멕시코 정부가 "주권 침해이며 구조적 해결 방안이 아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안전한 제3국이라는 어감은 좋지만 상대방 국가 입장에서는 짜증날 법한 협정이다. 미국 망명 신청자들에게 미국 정부가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기간 동안 상대 국가가 이들을 수용하라는 내용이다.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에 이민자를 떠넘긴다는 발상이다.
미국 시민 선서를 하고 있는 이주민들./출처=넷플릭스 (Out of Many,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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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이후 더 까다로워진 이민. 외국 국적자가 미국 시민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넷플릭스 '많은 사람 중 하나(Out of Many, One·2018년)'는 그 과정의 일부를 보여준다.
"오른 손을 들고 제 말을 따라해주세요. '나는 다음과 같이 서약합니다. 나는 외국의 군주나 정부와 주권에 대한 충성과 충절을 절대적으로, 전적으로 부인하고 포기 합니다.'"(미국 이주민의 시민 선언 中 루이스 베이더 긴즈버그·윌리엄 F 쿤츠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19세기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네덜란드인에 이어 20세기 한국인, 중국인 21세기 시리아인과 중남미 출신 등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향한다. 사실 시대를 불문한다.
미국은 '복지'가 발달한 북유럽과 달리 '자기 삶은 자신이 알아서 살라'는 자조(self-help) 원칙을 강조하지만, 그래도 이주민들은 미국 이민청 문을 두드린다. 이른바 캐러밴(미국 망명을 희망하는 중미3국 시민들)들은 목숨을 걸고 죽음의 사막 같은 미국·멕시코 접경지를 넘는다.
원래는 '이민자의 나라'였던 미국의 이주정책은 '용광로(Melting Pot)'로 불린다. 모든 민족이 미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섞여야 한다는 '통합'을 강조해서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한 마디는 미국이 '통합'을 중시하는 나라임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시민권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출처=넷플릭스 (Out of Many,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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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자유는 무엇을까요? 자유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견 없이 이해하려는 영혼입니다. 더욱 완벽한 화합을 이룩하는 것에 도움을 보태면서 앞으로 나아가세요. 우리 국가는 여러분 같은 사람들 덕분에 강해졌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찾아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먼 거리를 여행해 이곳에 온 사람들 덕분이죠."
시민권 선언식에 모여든 이주민들./ 출처=넷플릭스 (Out of Many,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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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4일, 민주당이 주도하는 연방 의회 하원이 '꿈 법(DREAM Act)'을 찬성 237(공화당 7명 찬성 포함)대 반대 187로 통과시켰다. 이른바 '꿈꾸는 청년들(dreamers)'들이 미국에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법안인데 2001년 만들어진 이후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른마 다카(DACA·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제도, 2012년 도입)는 이런 청년들의 추방을 유예해 준 제도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폐지한다고 했다가 법원이 대통령을 막아섰다.
'꿈 법'에는 TPS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꿈 법이 트럼프 대통령 소속당인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현지 분석이다. 이 법안은 처음에 공화당 소속 부시 정부 시절인 2001년 민주·공화당 상원 의원 두 명이 손잡고 만들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현실을 모르는 민주당 몽상가들이 만든 것"이라고 비난해 왔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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