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당초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를 통해 자사고·특목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정책을 폈지만 올해 자사고 폐지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입시 공정성 논란이 커지자 ‘고교 서열화 해소’를 명분으로 일괄적인 자사고·특목고 폐지에 나섰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교진 세종시교육청 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도 교육청 교육감./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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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측은 "당사자들과 협의 없이 교육체제를 뒤흔드는 국가 교육정책"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서 향후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정부는 고교 서열화와 교육불평등 해소를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교육계에선 "수월성과 다양성 교육이 강조되는 시점에 정부가 고교 유형까지 획일화하는 정책으로 교육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7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등 특목고에 대한 설립 근거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연내 개정해 2025년부터 모든 자사고·특목고를 한 번에 일반고로 전환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가 사교육을 심화하고 부모 소득에 따라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며 "입시 공정성을 확보하고 미래 고교교육을 준비하고자 일반고 전환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목고 2025년 일반고로 일괄전환…전국 단위 자사고 폐지
시행 방안에 따르면,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는 2025년부터 자사고 42개교, 외국어고 30개교, 국제고 7개교 등 총 79개교가 일반고로 전환된다. 교육부는 이들 고교의 설립근거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을 삭제하는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2024년까지 자사고와 외고·국제고에 입학한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자사고·외고·국제고 학생 신분이 유지된다. 2025학년도부터 고입 선발 및 배정은 일반고와 동일하게 운영된다.
일반고로 전환돼도 학교 이름은 그대로 쓰고 특성화된 교육 과정도 운영된다.
정부는 앞으로 자사고 폐지 수단으로 활용됐던 재지정 운영성과 평가를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교과 과정 운영과 사회통합전형 선발·법정부담금 납입 등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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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자사고는 선발 지역이 광역 단위로 축소되고, 전국 단위 모집 일반고는 모집 특례가 폐지된다. 예를 들어 전북 상산고 같은 경우는 현재 전국 단위에서 지원이 가능하지만 2025년부터는 평준화 지역인 전주 학군과 비평준화 지역 학생만 지원할 수 있다. 비평준화 지역인 강원도에 있는 민족사관고는 강원 전역에서만 선발할 수 있다.
과학고·영재학교는 신입생 선발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영재학교 지필평가 폐지, 과학고‧영재 학교 지원시기 동일화 등을 검토해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에 5년간 2조2000억원 투입
정부는 2025년 일반고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 시점에 맞춰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도 발표했다. 앞으로 5년간 2조2000억원이 투입된다.
우선, 학생의 진로 설계를 지원하고 학교 내에 원스톱 지원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를 위해 중학교 3학년 2학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에 진로와 학업 설계를 돕는 ‘진로집중학기제’를 추진한다. 학생부 기재 격차 완화하기 위해 학생의 교과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기록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기재 표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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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또 학교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다양한 맞춤형 교육 제공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학생 필요에 따라 이수 단위 조정을 허용하거나 이수과목 수 제한을 완화하고, 수월성 교육이 가능하도록 교과 특성화 학교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에 따른 대입제도 개편은 내년에 추진할 예정이다.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을 2020년 부분 개정하는 데 이어 2022년 전면 개정해 2025학년도부터 고등학생이 대학생처럼 수업을 골라 듣는 학점제형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자사고 "학교선택권 왜 빼앗나" 반발…교육계 "정권 바뀌면 또 뒤집힐 혼란"
교육부의 자사고·특목고 일괄 폐지 방침이 발표되자 자사고 측은 즉각 반발했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자교연)와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자학연)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총선을 의식해서 정치적 이해득실만 고려하는, 교육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밀어붙이기식 교육 폭거"라고 했다.
김철경 자교연 회장(대광고 교장)은 "자사고를 적폐로 단정하고 일괄 폐지하면, 교육 특구 부활과 사교육 영향력이 막강했던 잘못된 과거로의 회귀라는 교육의 병폐, 획일적 평등의 퇴행성 교육질환을 또다시 앓게 될 것"이라며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 결정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게 되고, 이로 인한 혼란과 갈등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자사고는 교육 수월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는 공교육의 모범"이라며 "억지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철경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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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전국외고교장협의회장은 "교육 미래에 대한 큰 틀 없이 포퓰리즘과 진영 논리로만 정책을 정하면 안 된다"며 "향후 외고 교장들이 모여 입장과 계획을 알리겠다"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이날 "고교 체제라는 국가교육의 큰 틀이 정권의 이념과 성향에 따라 시행령 수준으로 좌우되는 것은 교육법정주의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며 "차기 정권이 결정할 사안을 내년 총선용으로 밀어붙일 경우, 정권이 바뀌면 또 뒤집히는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총은 "정시 확대를 주문하며 고교학점제를 무력화시키는 상황에서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을 전제로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검토하는 것도 모순이며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 고교학점제 도입조차 차기 정권의 몫"이라고 했다.
교총은 또 "입시 경쟁의 근본 원인은 임금 차별과 학벌주의가 공고한 사회‧노동 구조에 있다는 점에서 자사고‧특목고에 그 책임을 온전히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며 "강남 8학군 등 교육특구나 지역 명문고가 부활해 학생 쏠림 현상이 빚어지고 우수 학생의 해외유학 수요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진보 성향 교육단체들은 환영의 입장을 보였다.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고교서열화 해소는 교육계에서 굉장히 오래 요구했던 문제"라면서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전 소장은 "현 정부 임기 내에 해결하지 않고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돼서, 이번 정책의 연속성이 담보될지는 의구심이 남는다"고 했다.
실천교육교사모임도 "외고·자사고는 특권층의 입시 수단으로 악용돼 왔고, ‘그들만의 리그’라 불리는 특권층 네트워크는 사회 통합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고교 서열화 해소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최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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