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꽉쥔' 현 남편, 재판 내내 한숨
전 남편과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받는 고유정(37)의 1심 선고 재판이 열린 20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201호. 유족과 일반 방청객, 취재진 50여명이 법정을 가득 채웠다.
재판 시작 10분 전인 오후 1시 50분쯤. 고유정의 현 남편이자 사망한 의붓아들의 아버지 홍모(38)씨가 법정에 들어왔다. 눈은 붉게 충혈되고 코끝은 빨갰다. 방청석 3번째 줄 왼쪽 끝에 앉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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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재판이 시작되자 고유정도 법정에 들어섰다. 긴 머리를 왼쪽으로 쓸어 넘긴 채 무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온 그는 법정 우측에 위치한 피고인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판장이 "고유정 본인이 맞느냐"고 묻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남편 홍씨는 고유정이 입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그가 자리에 앉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고유정이 고개를 숙이면서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을 가렸다. 방청석은 침묵을 유지했다. 아무도 고유정을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돌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첫 재판 당시 고유정에게 "살인마"라고 소리친 방청석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는 내내 고유정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방청객들은 눈을 감거나 팔짱을 낀 채 조용히 판결문을 들었다.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홍씨는 재판부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판단을 밝히기 시작하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고유정이 자신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나오자 다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무릎 사이에 둔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재판부는 고유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의붓아들을 살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만큼 직접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고유정은 무기징역 형량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선고 직후 재판장이 고유정에게 "무죄(의붓아들 살해 혐의) 부분에 대한 공시를 원하느냐"라고 묻자, 고유정은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재판이 끝나자 방청객들은 썰물처럼 법정을 빠져나갔다. 홍씨만 자리에 남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변호사가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법정 밖에서는 탄식이 이어졌다. "판결이 이상하다" "무기징역이 맞느냐" "정말 사형이 아닌 거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
20일 오후 2시 30분쯤 고유정 사건 1심 판결이 종료된 후, 고유정의 현(現)남편 홍모(38)씨(오른쪽)가 홍씨 측 변호인과 재판이 열린 제주지방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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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아들 죽음의 진실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재판부에 묻고 싶습니다." 법정을 빠져나온 홍씨의 두 눈을 붉게 충혈돼 있었다. 홍씨는 "제 아들을 살해한 후 고유정은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며 "이전 범행에서 의심을 받지 않았다면 다음 범행을 저지를 때는 더 치밀하게 검색하고 계획했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두 사건의 전후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법리적 판단에 의해서만 판결을 내렸다"고도 말했다.
이어 "제3자의 침입이 없었고 부검에서 타살이라는 결론이 나왔는데 누가 내 아들을 죽였겠느냐"며 "우리 아들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고유정의 무죄 판결로 저는 제 아들 죽음의 원인도 모르는 사람이 됐다"고 토로했다.
홍씨 측 변호인도 "상식적으로나 법리적으로 부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즉각 항소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주리라 기대한다"며 "초동 수사가 제대로 됐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그 부분이 너무 아쉽다. 경찰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제주=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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