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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수돗물 유충 사태

잔반통 씻는 수돗물로도 갑질…‘임계장’ 경비원의 험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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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이야기> 저자가 본 ‘우이동 경비원’의 죽음

‘임시계약직 노인장’ 5년 “가장 힘든 경비일…극단적 생각 여러 번”

“부당한 지시 안된다” 규정한 공동주택관리법에 ‘처벌조항’은 없어

관리소장도 번번이 인격무시…방한복 부탁하면 “노인도 추위 타냐”

“자리만 늘리지 말고 근무환경도 챙겨야”

시민단체, 재발방지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 열어


한겨레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이자 5년째 비정규직 고령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조정진씨.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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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하나가 무릎을 꿇고 빌라고 하더라고요. 음식물 잔반통을 씻는데 ‘왜 수압을 세게 해 수돗물을 낭비하느냐’면서요. 극단적인 생각을 여러 번 했어요. 이번에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을 전해듣고 그 심정을 알기에 눈물이 쏟아졌죠.” 경비원의 노동 일기를 다룬 책 <임계장이야기>(후마니타스)의 저자이자 5년차 비정규직 고령노동자인 조정진(63)씨는 최근 입주민의 갑질로 세상을 등진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59)씨의 소식에 절망했다.

조씨는 12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제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4년 전 ‘임계장(임시계약직 노인장)’의 모습보다 그분은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에게 지속적인 협박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최씨는 지난 10일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조씨는 “(취업했던) 임시계약직 직종 가운데 아파트 경비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38년 동안 정규직으로 일하다 정년퇴직 뒤인 2016년부터 아파트 경비원, 버스회사 배차계장, 빌딩 경비원 겸 청소원 등 계약직 노동을 거쳐왔다.

아파트 경비원 생활은 무시당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조심스레 ‘몸이 안 좋다’고 하면 곧바로 그만두라는 말로 이어졌다. “경비원이 병에 걸리면 업무상 질병이어도 무조건 ‘노환이니 알아서 그만두라’는데 인격이 말살당하는 것 같았지요.” 관리사무소 직원은 날이 추워서 방한복을 얻으려는 조씨에게 “노인도 추위를 타느냐”고 했고, 미세먼지에 마스크를 부탁하면 “얼마나 더 살고 싶어서 그러느냐”고 비꼬았다. “일반 일터에서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져요. 하루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러면 잘라버린다’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조씨는 일을 시작한 지 1년만에 아파트 화단에 물을 물병이 아닌 양동이로 줬단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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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마련된 경비노동자 최희석씨의 추모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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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석, 조정진을 비롯한 수십만명의 ‘임계장’이 고통을 감당할 수밖에 없던 건 현실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어서다. 공동주택관리법 65조는 ‘입주자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지만 갑질을 처벌할 조항은 없다. “아파트 경비원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없어요. 노인 일자리 수만 늘리기보다는 근무환경 개선도 시급합니다.” 조씨는 강조했다. 주민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한 주민은 근무 중이던 조씨에게 먹으라며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건네기도 했다.

누군가의 부모인 ‘임계장’들은 쉽게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조씨는 자녀들의 학자금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로 나섰다고 했다. 숨진 최씨 역시 협박에 시달리던 순간에도 “내 새끼들 먹여 살려야 하니 일은 못 그만둔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위 경비원들을 봐도 직접 비정규직을 겪어보니 자식한테는 시키고 싶지 않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식이 정규직 될 때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견딜 수밖에 없는 거죠.” 조씨에게 “언제까지 임계장으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알 수 없죠. 다른 선택이 없으니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이렇게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편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등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은 이날 오전 최씨가 생전에 일했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앞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열어 가해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배지현 강재구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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