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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이춘재, DNA 검출과 자백 바탕으로 여성 14명 살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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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최악 장기미제사건 재수사 1년 만에 결과 발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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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이 2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이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아무도 처벌할 수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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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밝혔나 ▶ 5건서 이춘재 DNA 검출…다른 9건은 프로파일러 투입해 자백 끌어내
처벌은 불가능 ▶ 10차 피해자 시신 발견된 날로부터 15년 지난 2006년에 공소시효 만료
과거 부실수사 ▶ 은폐와 감금 등 혐의로 당시 검찰과 경찰 등 9명도 입건해 검찰에 송치
이춘재는 지금 ▶ 1994년 집에 놀러온 처제를 강간 후 살해, 무기징역 선고 받고 복역 중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경찰의 재수사가 1년 만에 마무리됐다. 첫 사건이 발생한 1986년 9월 이후 34년 만이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공소시효가 끝나 아무도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이번 수사의 한계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이춘재(57)를 살인 등 혐의로 정식 입건했지만 재판에 넘겨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춘재는 1994년 1월13일 집에 놀러온 처제를 강간·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이 사건에 대한 종합수사결과를 2일 발표했다. 경찰은 용의자로 특정한 이춘재가 14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다른 9명의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과 강도질을 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살해된 피해자들 역시 대부분 성폭행 후 죽임을 당했다.

경찰은 5건의 살인사건의 경우 30여년이 지났지만 증거물에서 DNA가 검출됨으로써 이춘재의 범행임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나머지 9건은 DNA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백으로 충분히 신빙성이 확보되고, 범인만이 알 수 있는 현장 상황 등을 진술함으로써 핵심 내용 등이 과거 수사기록과 부합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춘재가 저지른 나머지 25건의 강간사건에 대해서는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날 경찰은 과거 수사 당시 경찰 수사에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수사 결과 발표에 앞서 “당시 이춘재를 수사 대상자로 선정해 수사했음에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조기에 검거하지 못해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며 “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재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경찰 수사의 문제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하며 이춘재 범행의 피해자와 유가족 등 경찰 수사로 피해 입은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34년 만에 베일 벗은 강력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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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14건의 살인 중 1986년 9월15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경기 화성에서만 11건을 저질렀다. 나머지 3건은 수원과 충북 청주에서 각각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춘재는 2009년 여성 10명을 살해한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아 자백을 끌어낸 공은경 경위(41)를 비롯한 프로파일러들과 지난해 9월24일 부산교도소에서 네번째 면담을 하다가 범행 전체를 자백했다.

이춘재는 자백 당시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처제를 포함하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모두 15명이다. 그는 살인 말고도 34건의 성폭행 또는 강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일부 살인사건 피해자들 유류품에서 나온 이춘재의 DNA 등 증거를 토대로 14건의 살인 범행은 모두 그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다른 사건들의 경우 뚜렷한 증거가 없고 일부 피해자는 진술을 꺼려 확실한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사례에 대해서만 그의 소행으로 결론 내렸다. 이렇게 확인된 살인 이외 추가 성폭행·강도 범행이 9건으로 나머지 25건은 그의 범죄 혐의에서 빠졌다.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이춘재를 포함한 관련자들의 처벌은 불가능한 상태다. 이춘재가 마지막으로 저지른 살인인 ‘10차 사건’의 피해자 권모씨(69)의 시신이 당시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된 것은 1991년 4월3일이다. 이 때문에 권씨 시신이 발견된 날로부터 15년이 지난 2006년 4월2일을 기해 이춘재에 대한 살인죄 공소시효는 만료됐다.

이런 이유로 경찰이 이춘재를 살인 등 혐의로 정식 입건했지만 법정에 세우지는 못한다. 이에 따라 검찰로 넘겨진 이춘재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 또한 수사를 개시하면서 현행법상 이춘재에 대한 처벌은 불가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 수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가혹행위에 시신 은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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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사건 은폐와 감금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했던 당시 검찰, 경찰 등 9명도 입건해 이춘재와 함께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8차 사건,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수사와 관련해 각종 불법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1명은 두 사건 모두에 연관된 것으로 전해졌다.

8차 사건은 연쇄살인사건 중 유일하게 범인이 잡힌 사건이었으나 범인은 옥중에서 무죄를 호소했다. 8차 사건 담당 검사와 경찰 수사과장 등 8명은 당시 범인으로 지목한 윤모씨(53·당시 22세)에 대해 임의동행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아무런 법적 근거나 절차 없이 75시간 동안 감금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진범 논란’을 빚으면서 재심이 진행 중인 8차 사건과 관련, 당시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한 윤씨에 대한 불법 체포 및 감금이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8차 사건 당시 수사라인에 있던 경찰관과 검사 8명을 지난해 12월 직권남용 체포·감금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가혹행위 등 혐의로 입건했다.

이춘재가 추가로 자백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에서는 당시 경찰이 피해자 유골에 손을 댄 정황이 나왔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형사계장 ㄱ씨 등 경찰 2명에게는 실종된 초등학생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닉한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됐다. 이 사건은 1989년 7월7일 낮 12시30분쯤 화성 태안읍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이던 김모양(8세)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사라진 것으로, 이춘재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번 수사에서 드러난 이춘재는 물론이고 관련자 모두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난 탓에 이뤄질 수 없다. 8차 사건과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으로 입건돼 검찰에 넘겨진 검찰과 경찰은 자신들의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과거 이춘재에 대한 수사를 3차례 진행했지만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에서 배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6차 사건(1987년 5월2일) 발생 후 경찰은 1986년 8월에 일어난 초등학생 강간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를 불러 조사했지만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다. 경찰은 또 1988년 11월 8차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춘재의 음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의뢰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다르다는 감정 결과로 더 이상의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1989년 7월 발생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과 관련해 1990년 1월 이춘재를 다시 불러 조사했지만 범행 현장에서 채취한 용의자 족장(255㎜)과 이춘재의 족장(265㎜)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

■DNA가 ‘스모킹건’

경찰은 지난해 7월15일 처음으로 화성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을 국과수로 보내 DNA 검출·분석을 의뢰하는 것으로 이 사건 수사를 다시 시작했다. 사건 발생 시점과 유류품 발견 당시 환경 등을 고려해 DNA가 검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9차 사건 유류품부터 순차적으로 의뢰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9일 9차 사건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처음 검출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이후 3·4·5·7차 사건 유류품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와 이춘재의 DNA는 모두 5건의 살인사건에서 검출됐다. 여기에 이춘재의 자백이 더해졌고 자백에 대한 경찰의 검증 작업이 이어지면서 1차 사건(1986년 9월15일)이 발생한 지 34년 만에 마무리됐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15일~1991년 4월3일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에서 13~71세 여성 10명을 상대로 벌어진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이다.

사건 해결을 위해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 205만여명이고,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용의자는 3000명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3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ㄴ씨는 1990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1991년 4월 10차 사건 용의자였던 ㄷ씨 역시 아파트 4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7차 사건 용의자로 몰렸다 풀려난 ㄹ씨도 아버지 무덤 근처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4·5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경찰에서 고문 등 강압수사를 받은 ㅁ씨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1997년 스스로 생을 내려놓는 등 2차 피해도 속출했다.

최인진 기자 ij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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