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경주시 2019년 ‘직장운동경기부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보고서’의 설문조사 결과에 ‘해당사항 없음’이 적혀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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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가 지난해 소속 선수들을 대상으로 폭력 실태 조사를 했지만 폭력 행위가 없다는 결론를 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조사엔 고 최숙현 선수도 참여했다. 최 선수 유족과 동료 선수는 당시 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져 솔직한 답을 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경주시의 2019년 ‘직장운동경기부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설문 조사 결과 항목에는 ‘해당사항 없음’이 적혀 있다. 폭력·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선수가 없었다는 취지의 결론이다.
그해 조사는 1월15일에 경주시청 실업팀 선수 전원인 39명에 대해 무기명으로 이뤄졌다. 당시는 쇼트트랙 선수 심석희씨가 같은해 1월8일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직후였다. 최 선수가 경주시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에 소속돼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최 선수는 올해 1월1일 부산시체육회 소속으로 팀을 옮기기 전까지 경주시 직장운동경기부 선수로 생활했다.
설문지는 총 12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문항에는 “훈련 도중 구타나 얼차려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 “훈련 또는 시합 중 모욕적인 성희롱 또는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기숙사 또는 합숙소에서 지도자 또는 선배한테 구타(얼차려) 또는 성폭행(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등 질문이 포함됐다. 구타·얼차려·성희롱·성폭행 등 폭력 경험을 묻는 질문 아래엔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당했는지 묻는 문항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표시하라’는 질문이 추가됐다.
결과는 ‘해당사항 없음’이었다. 설문조사 후 면담내용의 ‘가해자에 대한 조치사항’ ‘피해자에 대한 조치사항’도 빈칸이었다. 향후 계획에만 “정기적인 실태조사로 직장운동경기부 (성)폭력 예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다함”이란 내용이 적혔다.
최 선수의 유족과 동료 선수에 따르면 당시 조사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9년까지 최 선수와 함께 경주시 직장운동경기부 트라이애슬론 팀에 속했던 선수 ㄱ씨의 변호인단은 이날 경향신문에 ㄱ씨가 ‘해당 조사 당시 팀 사무실에서 최 선수 등 팀 동료들과 함께 설문지를 작성했다. 그래서 설문에 솔직히 답하기가 어려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ㄱ씨는 동료 1명과 이날 변호인단을 통해 ‘팀닥터’ 안모씨, 김규봉 감독 등 4명을 검찰에 고소하고 고소인 겸 최 선수 사건의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 서부지검에 출석했다.
최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씨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같은 취지로 답했다. 최씨는 “(딸에게) 너희는 실업팀 설문조사 안하냐고 물어보니, 하지 왜 안하냐고 하더라”며 “‘니 와(너 왜) 그때 (폭력 경험 사실을) 안썼나’라고 물으니, ‘다닥다닥 붙여 가지고, 못쓰게 분위기를 만드는데 쓸 사람 누가 있냐’고 얘기하더라”고 했다. 최씨는 이어 “조사할 게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라거나 작성해서 가져오거나 하라고 해야지, 거기서 쓰라고 하면 누가 쓰겠나. 형식적으로 하는 건 의미 없는 조사”라고 했다.
경주시청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경주시 소속 전체 팀의 전체 선수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최 선수가 있던 트라이애슬론팀 선수들도 참여했다”고 했다. 경주시청은 “(설문 결과) 특이사항이 없었으니, 사후조치도 없었다”고 답했다.
경주시의회는 이날 경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경주시체육회가 지난해 실업팀 직장운동선수들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폭력과 따돌림이 있었다는 폭로에 경악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면서 “최 선수가 죽음으로서 알리고자 했던 체육계의 부조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직장 운동선수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이번 기회를 통해 반드시 근절될 수 있도록 촉구한다”고 했다.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오전 자신의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전인 지난 2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 김모씨, 팀닥터 안모씨, 주장 장모씨, 선배 김모씨 등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4월엔 대학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폭력사건을 신고했다. 당시 협회는 김 감독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김 감독이 ‘그런 사실 없다’는 취지로 발언하자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는 최 선수 신고 접수 후 최 선수에게 피해 입증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만 되풀이했고 적극적인 보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최 선수는 사망 하루 전인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사건을 진정했다.
조문희·고희진·윤기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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