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낙점받은 카멀라 해리스 상원 의원이 하루 뒤 첫 공개 석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판했다. 해리스 의원은 이날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체육관에서 열린 행사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함께 참석해 포문을 열었다. 해리스 의원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등에 대해서 손바닥 뒤집듯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며 "이런 대통령 때문에 미국인이 80초에 1명씩 죽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에 청중은 없었지만 두 사람은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다. 마스크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안이하게 대처해 미국에서 500만명 넘는 환자가 발생했다고 보고 무언의 시위로 일정을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해리스 의원을 집중 비판하는 등 각을 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해리스 부통령 후보 지명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대실패가 될 것으로 본다"며 조롱했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양당 후보 라인업이 완성됨에 따라 앞으로 이런 기싸움은 점차 빈도가 잦아지고 수위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밀리자 초조한 심리 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G7 정상회의 일정까지 대선 이후로 미루는 등 지지율 만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워리어' 역할을 하는 해리스 의원은 이날 독설을 쏟아내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적극 엄호했다.
해리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미국은 리더십이 간절히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를 선출한 사람들보다 자신에게 더 신경 쓰는 대통령, 우리가 직면한 모든 도전을 해결하기 훨씬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대통령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리스 의원에 대해 "바이든에게 그렇게 모욕적인 사람이 없었다. 바이든에 대해 끔찍한 말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부통령 후보가 돼 바이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얘기한다"고 비꼬았다. 이는 두 사람을 이간질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해리스 의원을 비난한 데 대해 "징징대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역사상 어떤 대통령보다 잘하는 것이라 놀랍지 않다"고 정면으로 받아쳤다.
한편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해리스 의원과의 첫 공개 행보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신나치주의자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횃불을 들고 현장에 나온 것을 기억하라"고 지적했다.
해리스 의원은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와 체계적 불평등에 대한 도덕적 심판을 경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오늘 아침 소녀들이 잠에서 깨어났고, 특히 흑인과 갈색인종 소녀들이 처음으로 그들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흑인·인도계 부모를 둔 해리스 의원을 영입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이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성향이 중도에 가까워 민주당 주류로부터 '집토끼(핵심 민주당 지지층)'도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해리스 의원은 바이든 전 부통령을 좀 더 '좌클릭'시키는 역할을 자처할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의원은 이날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와 제도적 불평등에 대한 도덕적 심판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인종차별 문제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은 선거자금 모금에서도 '해리스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해리스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직후 24시간 온라인 모금액에서 하루 기준 최대액을 기록했다"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민주당 온라인 모금 플랫폼인 '액트 블루(ActBlue)'에는 돈이 몰렸다. 해리스 의원 지명 직후 24시간 동안 약 3000만달러가 들어왔다.
이날 공개된 여론조사(CNBC·체인지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경합주 6곳 가운데 노스캐롤라이나를 제외한 5개 주(플로리다·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애리조나)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는 지난 7~9일 유권자 270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는 '해리스 효과'가 반영되지 않은 조사로 향후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 간 격차가 더 확대될지, 트럼프 대통령이 열세를 만회할지 주목된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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