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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바꾼 '노터리어스 RBG'…그의 빈 자리와 대선 영향은 [구정은의 '수상한 G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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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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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법원 사무실에 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AP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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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미국 상원에서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의원들 앞에 섰다. 60세가 다 된 긴즈버그는 1950년대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로스쿨을 나왔고, 수십 년 간 법조계와 학계에서 성차별과 싸워온 인물이었다. 에드워드 케네디 등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그는 자신이 평생 싸워왔던 사건들, 법정에서 변호한 사건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스티븐 와이젠펠드라는 젊은 남성이 아내를 잃었습니다. 혼자 갓난 아들을 키워야 하는 와이젠펠드는 사회보장사무소를 찾아가 어떤 혜택이 있는지 물었죠. 하지만 자신은 ‘엄마 수당’인 보육수당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성차별이 모두를 해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입니다.” 긴즈버그가 그 자리에서 말한 ‘와인버거 대 와이젠펠드 사건’은 아내를 잃고 홀로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도 보육은 ‘엄마의 일’이라는 법적·제도적 규정 때문에 보육수당을 못 받게 된 남성의 사례였다. 이 사건에서 긴즈버그는 와이젠펠드의 변호를 맡았고,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와이젠펠드의 손을 들어줬다.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인종, 젠더 등을 바탕으로 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법의 해석을 바꾸고, 법 자체를 바꾸려는 싸움이 거세게 벌어졌다. 긴즈버그는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변호사로서 맡았던 소송들, 대법관이 돼서 내놓은 판결들과 의견들은 하나하나가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역사적인 메시지들’이 됐다. 그의 변론들은 미국에서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가치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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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의 긴즈버그.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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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BG): 나는 반대한다>에는 그 시절 미국에 만연해 있던 차별의 실상들이 나와 있다. 당시 대부분의 주에서 임신한 여성을 해고하는 것은 합법이었다. 12개 주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성폭행하는 ‘부부 강간’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신용 거래를 하려면 남편의 서명을 받아오라는 은행들도 있었다. 1960~1970년대 내내 긴즈버그는 법으로 여성권익을 옹호하는 활동을 했다. 법대 교수로서 성평등 수업을 개설하고, 인권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변호사 겸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여군이기에 주택수당을 받지 못했던 ‘샤론 프론티에로 소송’, 배심원단에서 여성들을 배제하는 관행을 문제 삼은 ‘듀런 대 미주리 사건’ 등에서 그는 대법원과 싸워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대법관이 된 뒤에도 그는 줄곧 차별받는 이들의 편이었다. 특히 2000년대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긴즈버그는 ‘소수의견의 대명사’로 떠오른다. 대표적인 것이 타이어공장의 남녀 임금차별에 항의한 2007년의 릴리 레드베터 사건이었다. 레드베터는 법에 정해진 이의 제기 시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긴즈버그는 형식에만 치중한 판결을 비판하는 소수의견을 낭독하면서 “공은 의회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공을 넘겨받은 의회는 2년 뒤 2009년 공정임금법을 통과시켰고, 그 법에는 ‘레드베터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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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자신을 대법관으로 지명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함께 선 긴즈버그.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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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보수적인 미국 남부 주들이 투표권법의 적용을 피해갈 수 있도록 허락해준 ‘셸비 카운티 대 홀더’ 판결이 나왔다. 사실상 흑인들의 투표를 방해할 수 있도록 대법원이 허가증을 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때에도 긴즈버그는 소수의견을 낸 사람이었다. 분노를 담아 소수의견을 낭독하는 긴즈버그의 모습에 특히 젊은 세대가 환호했다. 래퍼 ‘노토리어스(Notorious·악명 높은) BIG’에 빗댄 ‘노터리어스 RBG’라는 별명이 생겼고 머그잔과 배지, 인형 등 ‘긴즈버그 굿즈’들이 팔려나갔다. ‘노터리어스 RBG’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밈(meme)이 됐다.

긴즈버그는 원칙에 있어서는 비타협적이었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는 사람이었다. 2015년 미시간대 로스쿨 학생들이 ‘법관도 여론을 의식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긴즈버그의 대답은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는 2016년 인터뷰에서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던 트럼프를 ‘사기꾼(faker)’이라 불렀다. 대법관이 장차 정부의 수장이 될 지도 모르는 사람을 예단한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긴즈버그는 “생각해 보니 내 대답은 잘못된 것이었다”라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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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샌드라 데이 오코너(맨 왼쪽), 소니아 소토마요르(왼쪽 두번째), 엘리너 케이건(맨 오른쪽) 등 동료 여성 대법관들과 함께 한 긴즈버그. | 미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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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의 아이콘 RBG는 18일(현지시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튿날 트위터에 전현직 미국 대통령의 글이 나란히 올라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향해 “자랑스럽게 우리를 뽑아준 사람들을 위해 결정을 내릴 권한을 행사할 위치에 있다. 미루지 말자!”는 글을 올렸다. 곧바로 후임 대법관 인준절차에 들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이상 속에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싸웠던 긴즈버그 판사의 투쟁은 암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유산을 명예롭게 기억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갔다.” 편가르기를 선동한 현직 대통령과 ‘미국의 민주주의와 이상’을 앞세운 전직 대통령이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애도의 물결 속에 후임 선정을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힘겨루기가 벌써 시작됐으며 대선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대법관은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지명하며, 상원 인준만 받으면 종신 재직권이 보장된다. 당장 벌어진 논쟁의 핵심은 후임을 누가 언제 지명하느냐는 것이다. 긴즈버그는 타계 직전 병상에서 “내가 가장 열망하는 것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는 후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며 마지막 바람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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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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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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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속전속결을 노리고 있다. 그는 “아주 빨리 후보자를 제시할 것”이라며 “아마도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3년 전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히스패닉계로는 최초로 지난해 플로리다주 대법관이 된 바버라 라고아 같은 보수 성향의 여성 판사들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유세에서 지지자들은 “그 자리를 채우라(Fill that seat)”고 연호했다.

미치 매커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지명을 하면 상원은 투표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현재 공화당은 상원 과반인 53석을 갖고 있다. 게다가 2017년 매커널은 대법관 결정에서는 필리버스터를 하지 못하게 제도를 바꿨다. 공화당이 절차를 밀어붙이면 민주당으로선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위선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크다. 2016년 2월 앤터닌 스칼리아 대법관이 대선을 9개월 앞두고 사망하자 매커널은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의 인준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며 법적 근거도 없이 대선 뒤로 절차를 미뤘다. NBC방송은 “긴즈버그의 마지막 바람이 ‘트럼프 대법원’의 위선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전했고, CNN은 스칼리아 사망 때와 지금을 비교해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의 말바꾸기를 집중 보도했다.

긴즈버그 생전에 미 대법원은 5-4로 보수파가 우세했다. 하지만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대체로 중립을 지켰고 사안마다 판결 성향은 달라졌다. 하지만 긴즈버그가 남긴 자리에 보수파 법관이 들어가면 균형추는 확실히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총기규제, 낙태할 권리, 성소수자 권리 등 미국의 중요한 사회적 논쟁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선 시비에서 긴즈버그 이후의 대법원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다. 2000년 대선 때 표를 더 많이 얻은 앨 고어 대신 부시에게 승리를 안긴 것은 재검표를 중단시킨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민주당과 ‘불복’까지 시사한 트럼프 대통령이 벌써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 선거 뒤에까지 법정 싸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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