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청산 경험 독일 시민들
소녀상을 ‘기억문화’로 이해
존치 공감대 더 커지는 계기
김소연 대표, 한정화 대표 |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부인 김소연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경제개발공사 한국대표는 13일(현지시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 논란을 두고 “한·일 간의 민족감정으로 축소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전쟁 폭력의 희생자인 여성의 보편적 인권 문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 9일 슈뢰더 전 총리와 함께 소녀상 철거를 결정한 베를린 미테구청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 대해 그는 “시위에 한국인보다 독일 시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면서 나치 역사를 청산한 경험이 있는 독일 시민들이 소녀상을 ‘기억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도 전화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사실관계를 두고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전시 성폭력”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나치 만행뿐 아니라 (19세기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식민 지배에 대한 과거 청산을 더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며 “일본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할수록 망신당한다”고 했다.
한 대표는 다만 “소녀상 비문의 문구 내용은 얼마든지 새로 조정할 수도 있다”며 타협 여지를 열어뒀다. 앞서 미테구는 비문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며 철거 명령의 근거로 제시했다.
다음은 이날 베를린 집회 직후 두 사람과 각각 나눈 일문일답.
■김소연 대표
- 공개 편지를 쓴 계기는.
“소녀상을 지키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었고, 독일 교민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항의서한 보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긴 하지만, 제가 항의서한을 보내겠다고 하자 남편인 슈뢰더 전 총리가 적극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 남편의 지지 의사도 함께 서한에 담아서 보냈다.”
- 독일 정치권과 시민사회 반응은.
“베를린 시위에 한국인보다 독일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참여했는데, 독일 시민사회가 그만큼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 한복판에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둔 베를린엔 역사에 대한 특별한 기억문화가 있다. 독일 시민들은 소녀상을 이런 기억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베를린 시정부가 사회민주당, 녹색당, 좌파당의 진보 연합정권이라, 녹색당 소속인 미테구청장의 결정에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고 비판도 많다. 독일이 나치 청산 과정에서 보여준 역사 의식과도 전면 배치되기에 독일 시민들은 이런 일이 생긴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 슈뢰더 전 총리가 한 말이 있나.
“한 나라가 미래로 발전해 나가려면 역사의 어두운 면과도 대면해야 한다고 평소에 말해왔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에도 실수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세대는 전쟁에 죄가 없지만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본다. 이번 일로 독일 내 비판 여론이 커졌고, 소녀상을 계속 존치하자는 독일 시민들의 공감대가 더 커지는 계기가 됐다.”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독일 입장에선 일본과의 관계에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전쟁폭력 희생자인 여성의 인권에 대한 보편적 담론 차원이다. 따라서 한·일 갈등이나 민족감정으로 축소되어 비쳐지지 않도록 외교적으로 독일을 설득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정화 대표
- 독일 현지 반응은.
“독일 시민들이 분개하고 용납할 수 없다더라. 베를린예술가협회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을 동의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냈다. (집권 기독민주당과 공동정부를 꾸린) 사민당이 소녀상 철거 취소 성명을 냈고, 다셀 구청장이 소속된 녹색당에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 구청에서 대화 제의가 왔나.
“가처분 신청으로 당분간 철거는 막았으니, 그 기간 어떤 제안이 올 것으로 본다. 구청 차원에서 철거를 자진 취소할 것 같다.”
- 구청장은 절충안을 말했다.
“비문에 성폭력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의 용기를 기린 것이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베를린 당국이 우리와 함께 소녀상을 세우기로 결정한다면 비문 내용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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