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헌정사 첫 판사 탄핵소추

사법부의 치욕...대법원장은 거짓말, 판사는 탄핵당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법부 치욕의 날

김명수 대법원장이 과거 자신의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 발언’을 부인하면서 했던 말이 하루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김 대법원장은 4일 “송구하다”며 사과했지만, 현직 대법원장의 거짓말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작년 5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내자 김 대법원장이 “사표를 수리하면 (임 부장이)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면서 반려했다고 본지가 3일 보도하자 그날 김 대법원장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대법원 명의의 공식 답변서를 국회에 보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 답변은 4일 임 부장판사가 김 대법원장과의 당시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과 음성 파일을 공개하면서 거짓으로 밝혀졌다. 법조인들은 “진실을 가리는 법원의 수장(首長)이 대법원 공무원을 시켜 허위 답변서를 국회에 보내고 언론에도 거짓말을 했다”며 “허위 공문서 작성은 불법이며 ‘거짓말 대법원장’이란 오명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당시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여당이)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며 “오늘 그냥 (사표를) 수리해버리면 (여당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임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이 이날 국회에서 가결됐다. 판사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임 부장판사가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세월호 7시간’ 관련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개입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게 탄핵 사유였는데 임 부장판사는 이미 작년 2월 해당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탄핵안은 본회의 무기명 표결에서 찬성 179표, 반대 102표, 기권 3표, 무효 4표로 가결됐다.

이 사안은 헌재(憲裁)로 넘어갔지만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과 거짓말을 둘러싼 파문이 계속됐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사법 독립 가치를 허문 발언이다. 탄핵 사유”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녹음 자료에서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송구하다”고 했다.

巨與, 판사탄핵 밀어붙여 놓고 역풍 걱정

국회는 4일 ‘세월호 7시간 재판’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국회가 현직 판사를 탄핵소추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1985년 당시 유태흥 대법원장과 2009년 신영철 대법관 탄핵안은 국회에서 부결되거나 자동 폐기됐었다.

임 부장판사 탄핵안은 민주당이 지난달 28일 탄핵 추진 방침을 결정한 지 일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선일보

野 "엉터리탄핵 사법장악" - 국민의힘 의원들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졸속탄핵 사법붕괴’ ‘엉터리탄핵 사법장악’이라고 적힌 피켓을 내걸고“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작년 5월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하자고 설치고 있는데 사표 수리하면 내가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고 말하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한때 여권 일각에선 ‘탄핵 역풍(逆風)’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지지층 결집은 되겠지만, 국민은 ‘코로나로 힘든데 집권 여당이 법관 탄핵으로 또 야당과 싸운다’ ‘사법부까지 길들이려 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 법사위 관계자는 “앞으로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거세질 텐데 민주당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어 탄핵 표결 이후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도 “이제 와서 탄핵을 되돌리기엔 늦었다”는 의견으로 정리됐고, 표결을 밀어붙였다. 이낙연 대표는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서 “탄핵소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국회가 책무를 다하도록 해달라”며 사실상 찬성표를 독려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표결 전 페이스북에서 “헌법을 위반했다면 당연히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가 탄핵해야 한다”며 힘을 실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과 임 부장판사 탄핵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고,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장과의 대화를 녹음해 공개하는 수준의 부장판사라면 역시 탄핵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야권은 강하게 반발하며 김명수 대법원장을 정면 비판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김 대법원장은 정권의 ‘판사 길들이기’에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사표 수리를 거부하면서 후배를 탄핵의 골로 떠미는 모습까지 보인다”며 “비굴한 모습으로 연명하지 말고 스스로 되돌아보며 올바른 선택을 하길 촉구한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김 대법원장을 향해 “여당의 탄핵 추진을 염두에 두고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후배의 목을 권력에 뇌물로 바친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본회의장에서 ‘졸속 탄핵 사법 붕괴’ ‘엉터리 탄핵 사법 장악’이라고 적힌 손 피켓을 든 채 항의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표결 전 의사 진행 발언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사건으로 법관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굳이 탄핵해야 한다면 첫 번째 대상은 김명수 대법원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표결 결과는 압도적 찬성이었다. 의결 정족수인 151명을 훌쩍 뛰어넘는 179명이 찬성했다. 지난 1일 탄핵안 발의(161명) 때보다도 18명 늘었고, 민주당 의원 숫자(174명)보다도 많았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자 야당은 일제히 기립해 “거짓말쟁이 김명수를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쳤고, 여당 의원들이 “조용히 하라”고 맞서면서 고성이 오갔다. 국민의힘은 의원 102명 중 99명이 표결에 참여했고, 윤상현 의원 등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까지 가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조백건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