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왼쪽)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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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 모두 정치권이 소환했다. 특수강간 혐의 재조사가 시작된 뒤 국외도피를 하려다 붙잡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 전 차관 사건은 공익제보자의 제보에 이은 국민의힘 기자회견으로, 한명숙 사건은 건설업자 동료 재소자의 진정을 받은 정치인 출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각 진영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의 의혹이 꼬리를 물고 서초동을 덮쳤다.
검찰은 즉각 반응했지만 대응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휘로 대규모 특별수사팀(검사 5명)이 꾸려졌다. 출국금지 과정에서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사건 발생 당시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외압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두 갈래로 수사가 진행됐다. ‘친정부’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수사 상황은 시시각각 언론을 통해 중계됐다. 여권과 지지자들은 ‘윗선’을 겨냥한 먼지털기식 수사라며 반발했다.
반면 ‘한명숙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수사(감찰) 방해 논란의 연속이었다. 담당 검사가 재소자에게 재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했다는 진정 사건에 대해 윤 전 총장은 검사 징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대검 인권부에 배당했다. 추 전 장관의 ‘대검 감찰부 직접 조사’ 수사지휘와 맞물려 법무부-검찰 갈등으로 번졌고, 이는 윤 전 총장 징계 사유로도 포함됐다. 최근에는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 의지를 밝혔던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사실상 수사에서 배제돼 논란이 일었다. 공소시효가 임박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재심의를 지시했지만, 대검은 고검장·부장 확대회의 끝에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과 여권의 무리한 ‘한명숙 살리기'라는 의견이 충돌했다. 인물(사건)의 상징성과 법무부-검찰 간 갈등이 겹쳐 사건의 본질이 휘발된 것이다.
김학의·한명숙이란 이름을 지우면 불법 출국금지, 모해위증교사란 핵심이 보인다. 두 사건 모두 검찰의 무리한 수사 과정에서 폐해가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건 혐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허위공문서’ 등 법과 절차에서 벗어난 위법 행위를 선택한 수사관계자, 피고인의 유죄를 끌어내기 위해 재소자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제보자로 활용한 ‘불법 수사 관행’ 모두 정치적 쟁점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문제였다. 김 전 차관을 법정에 세우기 위한 검사의 ‘위법 절차’가 대대적인 수사 대상이라면 한 전 총리 유죄 판결을 위한 검사의 ‘불법 수사 관행’도 철저하게 수사(조사)됐어야 한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기소) 만능주의’다. 검사들의 프로필에는 ‘○○사건 검사’라는 수식어가 붙고 당시 몇명을 구속(또는 기소)하고 어떤 형량을 받아냈는지가 실적처럼 따라붙는다. 어려운 사건임에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 결국 기소에 성공했다는 무용담 앞에서 검찰이 강조해온 ‘인권수사’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검찰 내에서는 아무리 인권수사를 강조해도 “수사 관행이 쉽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수사 못 하는 검사가 무슨 검사냐” “수사(기소) 말고 무엇으로 검사를 평가할 것이냐”는 반문도 있다. 박근혜·이명박 전직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 가족 수사를 비교하며 분명한 증거로 범죄를 입증했음에도 정치적 지형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푸념도 있다. 수사하면 기소해야 한다는 ‘검사 정신’이 바탕이 된 사고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은 지난 24일 새 수사지침을 발표하며 검찰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했다. “실적을 올리려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피의자의 자백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구속 수사하는 관행은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수사 중 발견한 별건 범죄를 수사하려면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가능성이 해소되거나 중죄가 아닌 범죄는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강조하며 무리한 별건 수사로 검찰을 정치적 전쟁터로 만든 전직 검찰총장 때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검경 수사권 조정 뒤 중대범죄수사청 설치까지 논의되며 검찰의 존폐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수사 만능주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검찰의 봄’도 오지 않을 것이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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