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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남북대화 3년째 침묵…‘코로나 당근’으로 물꼬 못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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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

대북 정책 어디로


한겨레

코로나19가 남북관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유행했으나 북한은 국경 봉쇄로 방역 정책을 잡았다. 지난달 10일 북한 평양의 경흥식품종합상점 직원이 전시장을 소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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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 단절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공식적인 대화가 한 차례도 없었다. 3년 동안 대화가 단절된 것은 1981~1983년 이후 처음이다. 북-미 대화 역시 2019년 10월 실무회담 결렬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답답한 나머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13일에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더 담대하게 자국의 백신을 주겠다고 제안하면 (…) 미국이 민생 분야의 제재 해제에 관심을 표명하면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모멘텀이 조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이런 호소에 호응할 가능성도 낮지만, 박 원장의 발언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여전히 ‘과거의 북한’을 상정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했던 북한에게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은 인도적 목적과 함께 대화 실현을 위한 유력한 수단이었다.

오늘날의 북한도 어렵다. 미국 주도의 강력한 경제제재는 이미 상수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와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이른바 ‘삼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안팎에선 백신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과 제재 완화 시사가 대화 재개의 유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정은 정권이 선군정치에서 선경정치로의 전환을 도모하면서 인민생활과 경제발전을 매우 중시하고 있기에 이러한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남북대화 햇수로 벌써 3년째 단절

코로나19에도 “우리식 방역” 대처


코로나가 ‘게임 체인저’ 된다고?


기실 2020년 초에 코로나19가 발생·확산되면서 이것이 남북관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유행했었다. 북한의 보건의료와 방역 역량이 매우 취약한 만큼 방역 물자와 백신 지원이 남북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선택한 방식은 국경을 전면 봉쇄해 코로나19의 유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에 맞춰졌다. 그 결과 북한은 12월17일까지 코로나 확진자를 0명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반해 백신 접종률이 낮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백신 접종자들 사이에서도 돌파감염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에 대한 인류의 반격”은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백신 지원 제안이 북한을 대화로 나오게 하는 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으로서는 백신을 지원받는 과정에서 자칫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바이러스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국경 봉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우리식 방역 체계”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제재 완화 시사도 유력한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선 미국이 응하지 않고 있다. 또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제재를 가리켜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제재 완화가 추진되어도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제재 해결은 북한에게 ‘불감청 고소원’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의 대북 적대시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여기면 제재 완화 시사에도 대화에 쉽게 나오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2019년 이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렵지? 우리가 도와줄게, 대화하자’는 틀에서 맴돌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민생과 경제를 매우 중시한다는 것과 기존의 대북정책이 통할 것이라는 기대는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외정책은 타자와의 상호작용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상호작용의 과거-현재-미래가 대외정책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미래의 기대를 실현하려는 현재의 정책은 과거의 경험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행위자가 과거-현재-미래에도 동일할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집권 10년차를 맞이했고 또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북한을 통치할 김 위원장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2018년과 2019년에 미국 대통령에게 받았던 약속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것이었고, 남북정상회담에선 “단계적 군축”을 추진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는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에 나서고 말았다. 그러자 북한은 2019년 3월부터 이 두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왔다.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한미는 연합훈련을 계속하겠다고 하고 문재인 정부의 군비증강은 지칠 줄을 모른다.

백신 준들 ‘게임체인저’ 구실 못해

군비증강 대신 현실대안 준비해야

호응 없는 제안 되풀이로는 안돼


정부 안팎에선 한미연합훈련과 군비증강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종전선언이 이뤄져도 이러한 국방정책에 어떤 변화를 도모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이 없다. 그러곤 북한의 호응 없는 제안만 되풀이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큰 틀에선 마찬가지다. 한미 동맹과 국방력 강화를 공언하면서 인도적 지원 의사는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대북정책의 진화를 도모할 때이다. 대북지원은 상기한 문제들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선 더 이상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없다. 유력한 수단은 어쩔 수 없다는 한미연합훈련과 군비증강을 자제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국방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현실과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로 땅이 꺼져라 내쉬는 한숨이 연결된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 정부가 갖게 된다면, “존재론적 위협”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기후위기 대처에 군사활동의 축소가 유의미한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묻지마식 군비증강이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 실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성찰하게 된다면, 의미 있는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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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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