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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美 “북방영토는 일본 땅”… 對日 철강 관세엔 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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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中·러에 맞서려 日 적극 배려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동시에 상대하게 된 미국의 ‘일본 중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람 이매뉴얼 신임 주일미국대사는 부임 보름 만인 7일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 분쟁에서 직설적으로 일본 편을 들고 나섰다.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는 8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본에 부과했던 철강 관세를 일부 면제해 주기로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대중 견제’를 이유로 들었다. 일본을 ‘러시아와 중국에 함께 대적할 파트너’로 다양한 측면에서 배려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국대사 공식 지명이 지연되고 철강 협상은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한국 상황과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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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 이매뉴얼(왼쪽) 신임 주일 미국 대사가 지난 4일 일본 도쿄 총리 공관에서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총리와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시카고 시장을 지낸 이매뉴얼 대사는 기시다가 일본 100번째 총리로 취임한 것을 축하하며, 이름과 등번호 100을 새긴 미국 프로야구팀 시카고 컵스와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선물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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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일본에 부임한 이매뉴얼 대사는 7일 “일본의 북방영토의 날을 맞아 분명하게 전달하고 싶다. 미국은 북방영토 문제에서 일본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일본과 러시아는 1950~1960년대부터 홋카이도 동북쪽과 캄차카 반도 사이 쿠릴 열도에 있는 4개 섬의 영유권을 다퉈왔다. 현재 이 섬들을 실효 지배 중인 러시아는 이곳을 ‘남쿠릴 열도’로 부르지만, 일본은 ‘북방영토’로 부르고 있다. 이매뉴얼 대사는 이 섬들을 영어로 “북방영토(Northern territories)”라고 표현하면서 “미국은 1950년대부터 분쟁이 있는 이 4개 섬에 대한 일본의 주권을 인정해 왔다”고 말했다.

이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도쿄에서 열린 ‘북방 영토 반환 요구 전국 대회’에 참석해 “러시아가 법적 근거 없이 76년간 점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보수파 집결에 앞장섰다. 그런 분위기 속에 미국 대사가 공개적으로 지지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이 냉전 시기부터 이 문제에서 일본을 지지하긴 했지만, 이런 수준의 공개 지지는 전례를 찾기 어려워 일본에서도 다소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일본과 중국이 영토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일본 측으로부터 “100점 만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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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통신을 비롯한 일부 일본 언론은 이매뉴얼 대사의 발언이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동영상에서 이매뉴얼 대사는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있다”며 “북방영토부터 크림반도, 우크라이나 동부까지 누가 침략자인지는 모두 알고 있으며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격리를 마치고 지난 1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매뉴얼 대사는 기시다 내각과의 융화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물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기시 노부오 방위상을 만날 때마다 항상 ‘블루 리본’ 배지를 착용하는 게 단적인 예다. 블루리본 배지는 일본의 납북피해자가족회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푸른 하늘과 바다를 형상화해 만든 것이다. 기시다 내각 각료 모두가 납북자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이 배지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매뉴얼 대사가 여기에 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수입 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일본 철강에 부과했던 25% 관세를 일부 면제해 주기로 했다.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을 도입해 일본이 2018~2019년 미국에 수출한 수준인 125만t의 일본산 철강에 대해서는 관세를 매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작년 10월 유럽연합(EU)과도 같은 방식으로 철강 관세 분쟁을 해결했다. 다만 일본 알루미늄에 부과한 관세 10%는 그대로 유지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 대표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합의는 지난해 유럽연합과의 결의와 함께 철강 분야에서 우리가 중국의 반경쟁적, 비시장적 무역 행위와 싸우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고 밝혔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경제산업상이 서명한 미·일 공동 성명에는 제3국 시장에 대한 철강 및 알루미늄 수출입 데이터를 미국과 공유하고 ‘비시장적 과잉생산능력’에 대한 대응 조치를 양국이 논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결국 중국에 대한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대가로 미국이 일본에 대한 고율 관세를 철회했다고 볼 수 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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