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강력한 대러 전선을 구축했다. 러시아를 겨냥해 광범위한 경제 제재 조치를 발동했고, 우크라이나엔 아낌없는 군사적·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서방이 규합하면서 대서양 동맹 복원의 신호탄이 됐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제재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대응이 러시아의 침공 중단이라는 가시적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서방 대 러시아의 대치가 장기화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EU와 함께 강도높은 러시아 제재를 발표했다. 러시아 첨단산업 수출통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제재는 물론이고 ‘핵옵션’으로 거론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결제망 배제까지 포함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기로 했다. 내용 면에서 이전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고강도 제재였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까지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도 제재에 동참했다.
미국과 유럽은 제재와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펼쳤다. 우크라이나에 헬멧 5000개를 지원했다가 비웃음을 산 독일은 분쟁 지역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대전차 무기와 스팅어 대공 미사일 등을 대거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냉전 기간 줄곧 중립을 지켜온 핀란드와 스웨덴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의지를 내비쳤다.
관료화되어 힘이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EU와 나토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EU는 사상 처음으로 공격받는 나라를 위해 무기 조달을 위한 재정지원을 결정하면서 외교적 입지가 커졌다. 나토 분열을 노린 푸틴의 의도와는 달리 나토의 결속도 더욱 단단해졌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유럽 국민들의 나토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폴란드는 77%, 독일 64%, 스웨덴 44%가 나토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바이든 대통령을 위시한 유럽 주요국 지도자들은 부진했던 지지율이 반등하는 등 국내 정치적으로 ‘반사이익’도 누렸다.
그러나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것만으로는 전쟁을 멈추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아왔다. 푸틴의 침공 계획을 앞장서서 경고해온 바이든 정부가 처음부터 군사 개입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면서 러시아에 침공할 빌미를 줬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의 공습과 포위 작전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날로 커지고 있다.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과 내부 실향민 숫자가 1000만명에 육박하면서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인도적 위기에 직면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달라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했다. 러시아와의 전면 충돌로 번질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토의 존재감이 커졌지만 역설적으로 나토 중심 유럽 집단안보체제에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빈틈없는’ 공조를 과시해온 미국과 유럽의 대응에도 틈새가 나타날 수 있다. 경제 제재만으로 러시아의 철군이나 휴전을 끌어낼 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미국 사이에 추가 제재 범위를 놓고 이견을 보일 수 있다. 전쟁과 제재로 글로벌 공급망 교란이 확산되고 원유, 천연가스, 밀 등 세계 에너지·식량 가격이 폭등하는 것도 서방의 대응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위기가 미·중 갈등을 증폭시키는 양상을 보이는 점은 우려를 자아낸다. 러시아에 제재를 우회하는 활로를 터줄 것으로 관측되는 중국이 미국의 우려대로 실제 러시아 지원에 나선다면 미·중 대립은 더욱 고조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1호기에 탑승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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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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