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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기자의 시각] 승부 조작 죗값은 고작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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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8일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이사회. 축구협회는 2011년 승부조작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 48명 등 100명의 축구인들에 대해 대사면 조치를 단행했다./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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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와 축구 대표팀 평가전을 눈앞에 둔 28일 오후 7시. 대한축구협회에서 한 건의 보도 자료가 왔다. 제목은 ‘축구인 100명 사면 단행’. 핵심은 2011년 국내 프로축구 K리그에서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52명에 대한 영구 제명 징계를 해제하는 등 비위 축구인 100명에게 내려졌던 징계를 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축구 담당 기자들 시선이 국가대표팀 경기에 쏠려있던 틈을 타 슬며시 밀어넣은 ‘꼼수’임이 확연했다. 협회가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이때 알린 것이었다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2011년 승부 조작 사건은 축구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프로 선수들이 도박 사이트 브로커에게 돈을 받고 일부러 경기를 져줬다. 당시 문체부와 검찰에서 조사받은 선수와 감독만 100명이 넘었다. 최성국과 권집, 김동현, 염동균 등 대표팀에서 뛰었던 유명 선수도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일부러 수비를 느슨하게 해서 실점하거나, 전반 이른 시간 퇴장당하는 식으로 승패를 조작했다는 게 수사 결과였다.

10년 징계면 충분하다는 게 이번 사면을 단행한 협회의 입장이다. 징계 탓에 협회 산하 어떤 곳에서도 일할 수 없어 생활고에 시달린 이들을 구제해준 것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 축구협회는 이 중요한 사안을 밀실에서 결정해 놓고 결과를 몰래 통보했다. 당시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후배 선수들과 축구팬이 많다. 이들의 의견을 듣고 신중한 논의를 거쳐 결정했어야 한다. 사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K리그 측은 재검토를 요청했으나, 일부 임원이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뜻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공개적인 사면 명분은 더 기이하다. 협회는 보도자료에 “지난해 달성한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썼다. 월드컵 16강 진출과 축구 승부 조작 사면이 무슨 상관이 있나. 더구나 축구협회는 누굴 사면했는지 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가 범죄자 특별사면을 할 때도 주요 명단을 공개한다. 그래서인지 그중 누군가가 나중에 축구협회에서 일할 것이라는 괴담도 떠돈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승부 조작 혐의로 2013년 제명된 강동희를 사면하겠다고 나섰다가 반발 끝에 무산됐다. 역시 승부 조작으로 기소됐던 프로야구 선수 김성현과 박현준은 2012년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제명됐고, 지금도 그 상태로 있다.

도박꾼들에게 돈을 받고 경기 결과를 바꿨던 승부 조작범들이 돌아온다. 어린 선수를 지도하는 교육자나 행정가가 될 수도 있다. 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큰 잘못을 저질러도 시간이 지나면 죄가 알아서 씻긴다고는 배우지 않았으면 하는데, 알아서 보고 배우지 않을까.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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