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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최아무개씨는 최근 이동통신사들이 5세대(5G) 중간요금제를 새로 내놨다는 소식에 ‘한 번 갈아타 볼까’ 하고 통신사 누리집에 들어갔다가, “눈이 핑핑 도는” 느낌을 받고 인터넷 창을 닫아 버렸다. 최씨는 “가입을 위한 연령 조건, 결합 할인 조건, 기본 데이터 소진시 추가 데이터 이용 방식 등이 통신사마다 다르고 같은 통신사 안에서도 요금제마다 다 달라 어느 요금제가 더 싸다는 것인지 한눈에 비교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비상민생경제회의에서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 방안을 주문한 뒤 에스케이텔레콤(SKT), 엘지유플러스(LGU+) 등 이동통신사들이 잇따라 ‘5G 중간요금제’를 내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사들은 “이용자 선택의 폭을 다양화해 편익을 늘렸다”고 홍보하지만, 이용자 쪽에서는 “선택지가 많아져 혼란이 커진 데 비해 실질적인 요금 인하 효과는 와 닿지 않는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 “통신 요금 설계 기본은 비교 최대한 어렵게”
에스케이텔레콤과 엘지유플러스가 지난달과 이달 각각 내놓은 새 5G 요금제들을 보면, 에스케이텔레콤은 월 5만9천원에 데이터 24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는 기존 ‘베이직 플러스’ 요금제에 월 3천∼9천원의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13∼75GB의 추가 데이터를 쓸 수 있는 ‘옵션 추가’ 형태의 중간요금제를 내놨다.
엘지유플러스는 50GB(월 6만3천원), 80GB(6만6천원), 95GB(6만8천원), 125GB(7만원) 등 데이터 기본 제공량에 따라 요금제를 세분화하고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후에도 최대 3메가비피에스 속도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경우 기본 데이터 소진 후 속도가 최대 1메가비피에스다. 이를 비교해 보면, 월 6만6천원짜리 요금제는 엘지유플러스의 데이터 기본 제공량이 더 많고, 6만8천원짜리는 에스케이텔레콤 쪽이 더 데이터량을 많이 줘 어느 쪽이 더 싸다고 이야기하기가 애매하다. 케이티(KT)는 아직 중간요금제를 출시하지 않았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자신에게 적합한 데이터량과 속도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찾고 싶어도, 한 통신사 안에만 비슷한 조건의 요금제가 10여종이어서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유튜브를 많이 본다’ 정도는 알아도 지금 쓰는 요금제의 기본 제공 데이터량을 가지고 충분한지 부족한지 판단이 어려울 것”이라며 “속도를 보여주는 1메가비피에스도 유튜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속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이동통신 업체 요금설계 담당자 역시 “통신 요금 설계의 기본은 경쟁사와의 가격 비교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1메가비피에스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할 때를 기준으로 저화질 영상을 원활하게 볼 수 있는 수준이지만, 3메가비피에스는 고화질 영상까지 볼 수 있는 속도다.
■ “대출금리처럼 통신요금도 비교 플랫폼을”
정부는 이동통신 요금제가 복잡해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적절한 상품을 찾기 어려운 이른바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지난 13일 ‘통신요금정책 개선방향 논의를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서 “이용자들이 통신요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비교해 선택할수록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통신사들 간 경쟁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각 통신사들의 요금제를 소비자들이 알기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설명이다.
여러 통신사 요금제 정보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방안으로 꼽힌다. 염수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서비스이용정책연구실장은 지난해 12월 ‘통신 이용자 보호를 위한 이용정보 제공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OTA)와 정부가 함께 운영하는 통신요금 정보 포털인 ‘스마트초이스’나 민간이 운영하는 알뜰폰 요금제 검색·비교 서비스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들에 내 통신 서비스 이용량을 자동으로 불러오는 기능이 없다”며 “제3자 기관이 맞춤형 정보를 다양하게 분석해 제공할 수 있게 통신 마이데이터 사업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윤규 차관은 14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금융 분야 대출금리 비교 서비스처럼 통신 분야도 개별 이용자들의 데이터 사용량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 이용 중인 통신사뿐 아니라 다른 통신사들 요금제 정보까지 적용해 확인할 수 있는 ‘통신 요금 비교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개별 사업자들이 보유한 이용자 데이터를 정부나 제3기관이 가져다가 쓰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빠른 시일 안에 국회와 상의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 “최적 요금제 정보, 통신사가 먼저 알려줘야”
서로 다른 통신사 요금제를 모아 비교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기에 앞서, 통신사가 소비자에게 자신의 데이터 사용량에 맞는 ‘최적 요금제’를 추천하게 만들자는 방안도 나온다.
유럽연합은 지난 2018년 유럽전자통신규제지침(EECC)을 제정하면서, 통신사들이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 요금제를 계약 종료 때 뿐만 아니라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알려주도록 의무화했다. 영국은 2020년 2월 가장 먼저 관련법을 고쳐 최적 요금제 고지 제도를 시행했다. 이후 영국에선 최적 요금제 고지제 도입 뒤 초고속인터넷 재계약 체결률이 통신사별로 적게는 3%, 많게는 13%까지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자, 소비자들이 다른 통신사를 찾는 대신 적합한 요금제를 찾아 기존의 통신사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염수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서비스이용정책연구실장은 보고서를 통해 “유럽에서 이미 시행 중인 최적요금제 고지 의무를 국내에 도입하면 이용자들의 합리적인 통신 소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기업들은 통신 요금 관련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방향의 규제 강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은 “통신 요금 고지서에 ‘착시 효과’가 있다”는 하소연을 자주 한다. 음원과 동영상 등 콘텐츠 서비스나 이커머스 구독 상품들과 묶음 요금제를 택하는 소비자들도 많아 통신 요금 체계가 복잡해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고객들은 고지서에 찍혀 나오는 모든 비용을 한데 묶어 ‘통신비가 비싸다’고 여기니 억울하다”며 “요금 고지서에 찍힌 금액 가운데 상당한 비용은 단말기 대금과 부가서비스 등이어서 순수 통신 요금만 따지면 그렇게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적합한 요금제를 먼저 고지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관련 입법이 이뤄진다면 당연히 따라야 하지만 솔직히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더 싼 요금제를 선택하는 이용자가 늘어나면 이윤이 줄어들 게 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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