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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일본 신임 총리 기시다 후미오

“한국, 미래 위해 마음 열어”… 기시다, 징용 해법에 “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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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론 고려해 진전된 과거사 발언

조선일보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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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7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사죄·반성을 언급하지 않고 낮은 강도의 유감 표명만 했다. “역사 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면서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을 하게 된 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다만 지난 3월 정상회담 때 “역대 내각의 입장 계승”만 언급했던 것에 비하면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을 요구해온 국내 여론과 추가적인 과거사 사죄에 부정적인 자국 여론 등을 두루 고려해 이 같은 입장을 낸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지난 3월 해법으로 공식화한 ‘제3자 변제’를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이라 표현하며 “많은 분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주신 것에 감동했다”고도 했다.

외교가에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이 일보 진전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3월 16일 도쿄에서 열린 정상회담 당시 과거사 문제에 대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한)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했었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이 선언에는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구절이 명문화돼 있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사죄와 반성’이란 표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고 이번 방한(訪韓)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제징용’ 대신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신 분들’이란 표현으로 에둘렀다.

그러면서 “저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며 개인 입장을 전제로 일제강점기 한인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이와 함께 과거사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정부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외교 소식통은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50%가 넘어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상황에서 ‘성의 있는 호응’에 대한 한국 여론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개인 입장’으로 선을 그어 일본 내 반발에 대해서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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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기시다 총리 발언에 대해 윤 대통령은 소인수 회담에서 “한국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거나 요구한 바가 없는데 먼저 진정성 있는 입장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 “한일 미래 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과거사에 대한 인식 문제는 진정성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일방의 상대에 요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며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현안과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짝도 발걸음을 내디뎌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한일 간 꾸준히 소통해 과거사 문제의 진전을 추구하면서도 정치·경제·문화 등 다른 분야 협력은 확대해 나가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일 정상이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7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찾아 참배하는 것도 과거사 극복 차원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 측에서 먼저 평화공원 방문과 위령비 참배를 제안해왔다”며 “앞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정성을 말과 행동으로 이어가겠다는 행보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양국 정상의 평화기념공원 동반 방문은 우리 측이 일본에 성의 표시를 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히로시마는 기시다 총리의 고향이고,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은 가해자이지만 원폭에 있어서는 피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군의 원폭 투하 이후 71년 만에 히로시마를 찾았을 땐 우리 정부가 한국인 위령비 참배를 요구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한국인 희생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번 G7 회의에 조 바이든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한일 정상이 함께 위령비를 찾는 것이라 의미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기시다 총리 발언에 대한 정치권 반응은 엇갈렸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지난 정부가 5년 동안 한일 관계를 냉각 상태로 방치했는데 우리가 선제적으로 노력하니 일본도 따라오는 것 아니겠냐”라며 “일본 총리가 본인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굉장히 의미심장했다”고 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우호적인 셔틀 외교로 미래 지향적이고 발전적인 한일 관계의 새 장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반면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기시다 총리의 반성과 사과가 없었고, (징용 문제의) 강제성에 대한 인정 또한 없었다”며 “왜 양국 외교 복원의 전제가 우리 역사의 포기여야 하냐”고 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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